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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글]몬타뇰라, 헤르만 헤세 뮤지엄

2019년 1월 6일 업데이트됨

몬타뇰라, 헤르만 헤세 뮤지엄


소설처럼, 어느 날 문득 네가 먼 길을 돌아 나를 찾아온다면 꼭 함께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


헤르만 헤세가 생의 반을 살았던 몬타뇰라라는 작은 마을이야. 그 마을에는 헤세의 박물관이 있거든. 이곳은 좀 멀어서 기차를 여러 번 갈아타고 또 버스를 타고 내려서도 조금 걸어가야 찾을 수 있는 곳이야. 동네는 참 조용하고 외딴 산골 마을에 있어서 그런지 방문객도 많지 않은 듯해.


1997년 헤세의 탄생 120주년을 기념하여 후원자들과 헤세의 아들 하이너 헤세의 지원으로 문을 열었다고 해. 그냥 특이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마을의 한 집이 박물관이야. 들어가면 1층은 작은 서점처럼 보이는데 헤세의 저서들과 헤세에 관해 쓴 책들, 그리고 엽서나 기념품이 있어. 몇 걸음 들어가면 헤르만 헤세 시절부터 이웃집에 사셨을 것 같은 나이 지긋하신 분이 입장료를 받고 박물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셔.


지하로 내려가면 헤세에 관한 짧은 영상을 볼 수 있고, 대표작 표지로 만든 포스터들도 걸려 있어.


2층이 메인 전시관이야. 그곳에는 헤르만 헤세가 그린 수채화들이 걸려 있고 헤세의 번역본이나, 초판본, 세계문학총서에 선정된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있어. 그리고 함께 살았던 화가 군터 뵈머와의 우정에 관한 여러 기록들과 아들들과 주고받은 그가 직접 그린 그림에 글을 쓴 엽서와 편지들이 정성스럽게 전시되어 있어. 집 전체 공간은 크지 않지만 의도적으로 꽉 채우지 않아서 그런지 답답한 느낌은 없고 수채화의 색감 덕분인지 정겹고 따뜻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사진으로 봐서 아주 익숙한 그의 중절모와 동그란 안경들도 깨끗하게 전시되어 있어. 그가 쓴 책상, 타자기, 화구, 벽걸이용 카펫, 옷도 시대를 잊고 그곳에 남아 있어. 사라진 것은 작가의 육체뿐 그의 글, 그림, 물건 들은 주인이 부재한 집에서 손님들을 조용히 맞이하고 있더구나.


헤세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는지. 헤세는 마흔 살이 되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심리치료법으로 시작했다고 해. 그의 초기 그림은 사실 어설퍼 보이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치료에서 열정으로 바뀌어서 그런지 색채가 점점 밝아지고 몬타뇰라가 있는 테신 지방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3000여 점을 습작으로 그렸다니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지. 그는 자신의 삽화가 실린 연작시를 발표해서 얻은 수입으로 전쟁 포로 후생사업소를 지원하기도 하고, 바젤, 빈터투르, 베를린, 드레스덴에서 수채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니 꽤 성공한 화가가 된 셈이지.


하지만 나는 그의 어설픈 초기작들이 마음에 많이 들어오더라고. 노벨상 수상 작가가 작은 나무의자에 혼자 앉아 풍경을 보며 물감을 묻혀 선을 그리고 색을 칠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즉 그림을 그리는 가운데 종종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는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발견했다. 그것이 객관적으로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는 중요치 않다. 내게 있어 그것은 문학이 내게 주지 못했던 예술의 위안 속에 새롭게 침잠하는 것이다."


- 펠릭스 브라운에게 보내는 편지 중


그렇게 잠시 그가 있던 시간으로 여행을 떠나 그를 만나는 거야.

"예술에서는 산업에서와 달리 시간이라는 것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으며…. 잃어버린 시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그의 말처럼 그곳에 있으면 세상 밖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다시 1층으로 내려와 헤세의 수채화가 그려진 그림엽서를 몇 장 고르고 그의 책을 다시 한번 둘러본 후 각자 딱 한 권만 고르는 거야. 그리고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시골 마을을 보폭을 맞추어 함께 걷자. 그러다 주인조차 보이지 않는 작고 텅빈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잠시 숨을 골라야겠지.


그리고, 그리고, 거기서, 그렇게, 다시, 헤어져도 괜찮을 것 같아.


작별 인사 같은 건 필요없어. 그저 잠시 눈빛을 나눈 채 다시 각자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거야. 날씨는 여전히 맑았으면 해. 그렇지만 눈을 찡그리지 않고도 너의 뒷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햇살이 많이 따갑지 않으면 좋겠지. 해는 네가 먼 길을 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높은 곳에 있어야 하고.


며칠 후 단정하고 아름다운 너의 손글씨가 담긴 헤세의 그림엽서가 도착했으면 좋겠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싱클레어와 데미안처럼.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에.




몬테뇰라 헤르만헤세 뮤지엄 http://www.hessemontagnola.ch/








*** 이 글은 객원 최경아님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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