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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글>황효빈-부자 나라의 빈곤 그리고 코로나

최종 수정일: 2020년 11월 16일

스위스의 복지 수준이 높다는 말을 흔히들 합니다. 하지만 이는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운한 물가 및 경제 수준에서 파생된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고 하는 말입니다. 복지란, 경제적 및 개인적 어려움에 처한 개인의 안녕을 지역사회 또는 국가에서 사회구성원들의 기여금이나 세금을 통해 책임지는 것을 말합니다. 스위스에 거주하는 한 개인이 생계에 위협을 받는 상황에 처했을 때 사회보조 (Sozialhilfe) 에서 기본 생활을 얼만큼 누가 보장받는지 깊게 파고들면 그 민낯을 볼 수 있습니다.

 

스위스 정치사회 체제의 기본 원칙은 연방주의 (Föderalismus)와 보조성 (Subsidiarität) 입니다. 연방주의라 함은, 분야별로 칸톤과 게마인데가 각각의 통치 및 지원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국방이나 수출입 등은 연방정부의 책임이지만, 교육 시스템은 칸톤별로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공공보건 시스템 또한 각 칸톤별로 입법 및 행정체계가 달라서, 국가 전체적인 신속한 조율이 필요한 팬데믹 시대에 특히 연방주의에 대한 잡음이 많습니다. 보조성이라함은, 개인이 스스로 생계를 이어나가지 못하고 주변의 도움도 전혀 구할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사회에서 일시적으로 생계보조에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적극적이고 포괄적이며 예방 차원의 지원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루체른대학의 한 사회복지학 교수는 스위스의 보조성 원칙이 양육 방식에도 녹아있다고 말합니다. 남유럽 바닷가 어딘가에서 파도가 밀려오는데 물에 빠지고 허우적 거리고 다시 일어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옆에서 바라만 보는 엄마는 분명 스위스 엄마일 거라 합니다. 그만큼 개개인의 책임이 국가 운영의 기본 원칙입니다. 여느 대형 서점 안내 코너에 문의하면 언제든지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작은 빨간 책, 스위스 헌법 (Bundesverfassung der Schweiz. Eidgenossenschaft) 제 1장에서부터 명시되어 있는 원칙입니다.

 

유럽의 복지를 왕왕 언급하는 한국에서는 스위스의 사회보조에 해당하는 생계급여에 1촌 이내의 부양의무자 적격여부를 심사합니다. 스스로 생계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배우자, 자녀 또는 부모가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 또는 재산이 있다면 생계급여의 자격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2022년 부터는 부양의무자의 유무여부에 상관없이 생계급여 신청자의 소득인정액만 기준으로 수급자를 선정하게 됩니다. 스위스의 경우는 이러한 부양의무자의 범위가 훨씬 넓습니다. 형제자매를 제외한 2촌 이내의 가족친척이 부양의무자에 해당합니다. 스위스 민법 (Schweizerische Zivilgesetzbuch)에 따르면, 스스로의 생계 유지가 불가능한 자가 사회보조의 도움을 받기 전에 반드시 부양의무자의 자격 여부를 따져야 하며, 부양의무자는 배우자 또는 수직 관계에 있는 가족 및 친척이라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자녀와 부모 관계는 물론, 조손 관계에서도 서로 부양의무가 있습니다.

 

스위스의 사회보조에 대한 세부사항은 연방주의 원칙에 따라 칸톤마다 그 법을 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원은 수급자의 거주지 등록이 되어있는 게마인데 (Wohngemeinde) 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게마인데 각각의 정치색이나 재원에 따라서 사회보조 신청을 흔쾌히 받아주는 곳이 있는가 하면, 거절에 거절을 거듭하고 결국 사회보조 신청자가 이사를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게마인데 단위에서 사회보조 담당으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개의 경우 도시로 갈 수록 사회보조 신청이 비교적 수월하게 받아들여지고, 교외로 갈 수록 사회보조 신청이 거부되는 경우가 많다 합니다. 작은 마을 단위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회복지사는 “게마인데가 야비해 질 수 있다 (Gemeinde kann gemein sein)”고 말합니다.

 

혹자는 무분별한 사회보조로 게으른 시민들이 늘어난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지난 10년 간 스위스 내 평균 사회보조 수급자는 국내 거주자의 3.3%에 해당합니다. 생계급여 수급자 비율이 전국민의 2.6%-3.4%를 오가는 한국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위에서 말한대로, 스위스에서는 각 게마인데에서 재원을 출원하고, 게마인데마다 세금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정작 세금을 내는 거주자를 위해서라도 사회보조 수급자의 수를 제한하는 것은 각 게마인데의 주요 숙제입니다. 편법이긴 하나, 간혹 게마인데에서 지원 가능 이상의 신청자가 생길 경우, 법적 부양의무가 전혀 없는 형제자매 또는 동거인의 도움을 받도록 권유하기도 합니다.

 

특정 정당은 사회보조의 수준을 대폭 줄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게마인데의 세금으로 생계보조를 받는 것도 모자라, 새 안경을 맞추거나 스마트폰을 사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보조 수급자의 현실은 가혹합니다. 일례로 높은 거주비용으로 유명한 취리히 시의 보조 현황을 보면, 4인 가족의 거주비용은 총 월 1,800 프랑을 넘어서는 안되며, 1인당 아침식사 1.50 프랑, 점심식사 5.00 프랑, 저녁식사 3.50 프랑으로 계산하고 있습니다. 매순간 10 라펜마저 꼼꼼히 챙겨서 아껴야 하는 현실입니다. 어린 자녀나 병원 치료가 필요한 가족 구성원이 있다면 게마인데에서 받는 사회보조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에 더불어, 사회보조 수급자는 빠른 시일 내에 생계수단을 찾을 의무가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1년 이내에 사회보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매일 한 푼이라도 아껴야하고, 게마인데의 갑작스런 보조 중단을 우려하는 동시에, 본인의 경험과 흥미에 맞는 생계수단을 단기간에 찾는 호사는 누리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단순 생계 유지를 위해 찾은 직업이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이런 도움이라도 간절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근 몇 년 간 지속되어 온 정계의 변화로, 이제는 외국인으로 사회보조를 받게된다면, 영주권 수준이 강등되거나 박탈될 수 있도록 연방 정부 차원의 외국인법이 개정되었습니다 (AIG:

Bundesgesetz für die ausländerinnen und die ausländer und für die integration). 작년 이맘때 쯤 반평생을 스위스에서 거주한 50대 스페인 남성이 사회보조 수급자면서 동시에 틀니 치료가 필요해지자, 아무런 연고가 없는 스페인으로 쫓겨날 신세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2020년을 쥐락펴락하는 코로나 사태에 사회보조의 역할은 더 커졌습니다. 취리히 시에서만 3월 록다운 후 일주일 새에 록다운 이전의 사회보조 수급자 세 배에 해당하는 새 신청자가 몰렸습니다. 다들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그 전에 빈곤선 저 너머에 있는 사람들, 또는 어쩌면 지금 빈곤선을 넘고 있는 사회구성원들을 감싸려는 새로운 생각과 노력이 절실한 때입니다. 그렇지 않았을 때 파생되는 새로운 사회문제들을 처리하는데 더 큰 비용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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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정보> 임시영주권이나 난민심사대기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스위스 거주 외국인은 사회보조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3월 록다운 이후 코로나 사태로 인해 부득이하게 사회보조가 급하게 필요한 분들을 대상으로 긴급 재원을 마련하도록 전국에 조치가 내려져 있습니다. 향후 상환 조치 등 몇 가지 조건이 붙긴 하지만, 급하게 생계지원이 필요한 분들이 계시다면 거주지 게마인데에 사회보조 담당자 (Sozialhilfe zuständige 또는 Sozialarbeiter)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글은 객원 황효빈님의 글입니다.

황효빈님은 미국 엘에이에서 청소년약물방지 활동가로 일했으며, 현재 칸톤 취리히 중독방지센터(FISP)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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