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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글> 김은진-사랑에 빠지는 것 말고 이 망설임을 넘어갈 길은 없다.

1월 6일 업데이트됨

불현듯, 인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은 우연히 그의 그림들을 만나고 부터다. 벨기에 화가 미카엘 보레만스. 그의 그림들은 아주 그로테스크하고 이상하며 진지하다. 가끔은 우스운 데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이 블랙 코미디 같다. 그의 작품들은 예술사적으로 디에고 벨라스케스와 프란시스코 고야 그리고 에두아르 마네와 많이 연관지어 설명되곤 한다. 그는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들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알프레드 히치콕이나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화들처럼 보레만스의 그림들은 기괴한 아름다움과 이야기 너머의 흡입력이 있으며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을 야기한다. 시각예술로서의 회화가 주는 감동은 줄거리가 있는 영화가 주는 그것과 사뭇 다르다. 물론 성당 내부를 장식하는 성화나, 사찰 대웅전 벽에 그려진 심우도처럼 맥락 안에서 이해되면서 더 큰 감동을 주는 그림들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설명도 없이 순식간에 마음을 사로잡는 그림들도 있다. 그의 그림이 내겐 그러했다.

미카엘 보레만스 Michaël Borremans- Horse Hunting 사진의 출처 : www.zeno-x.com

그 동안 추상작업을 해온 나는 인물을 통해 이런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자신이 낯설었다. 그래서 일단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다양한 각도와 거리에서 찍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겠다고 하면 다들 웃거나 미소를 짓는다. 사진을 적극 활용하는 보레만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변의 보통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들 전문 모델들이다. 나도 처음엔 그의 작품 속 인물들처럼 특이한 장면을 포착하고 싶어 웃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림을 그려보면 몇몇은 그 심각한 표정이 잘 어울리지만 어떤 이는 그릴 수 조차 없었다. 그들의 얼굴을 가지고 인간에 대한 나의 괴팍한 생각을 표현하기에는 그들과 나는 나름 너무나 가깝기 때문이었다. 나의 세대에 한국에서 입시미술을 공부한 사람들은 다들 데생을 배웠을 것이다. 인물은 다들 왠만큼 그릴 것이라고 생각했고 사진이 발달한 요즘에 왜 굳이 인물화나 풍경화를 그려야 하는 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머리 속에만 맴돌던 생각을 실행으로 옮겨보면 많은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서양미술은 인물화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잘 그린 정물화도 형편없이 그린 성화나 인물화보다 격이 떨어지게 취급을 받았다. 그에 반해 한국화는 산수화가 기조를 이루는데 이는 동양의 도가 및 자연사상으로 인해 인물보다 산수를 우위에 두는 가치관에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초상화가 성행하고 발달한 시기는 조선시대이다. 초상화를 통해 그 시대에 유행했던 피부병을 연구한 논문이 나올 정도로 당시의 초상화는 극사실주의에 가까웠다. 그에 반해 서양미술사는 내게 붓질의 변천사 같다. 20세기 인상주의를 지나치면서 대상의 질감의 모방이 아닌 그림으로서의 붓질의 질감을 표현하기까지 서양회화의 표현방법은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어왔던가. 나는 요즘 오일로 이런 저런 다양한 붓질을 해대고 있다. 물론 생각보다 훨씬 시행착오를 많이 하지만 무척 재미있다. 자주 한국의 초상화를 생각하면서.

요즘의 많은 작가들은 빔 프로젝터를 이용해서 인물사진을 캔버스에 투사해서 똑같이 모사해 놓고 채색을 한다고 한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그것을 묘사해보고 싶은 욕망과 비슷하게 그려갈 때의 기쁨을 아는 사람들이 그림을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들을 이해하기 힘들다. 사진작가도 자신도 모르게 그의 사진 안에 의도가 투영되지 않던가? 빛에 따라 인물은 아주 다르게 보이기 일수다. 거울 속에 비친 나 자신도 자주 달라보이지 않던가. 나도 내가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작업을 하지만 그것과 똑같이 그리는 데는 관심이 없다. 모방과 재현으로서의 회화는 이미 사진에게 그 역할을 내주지 않았던가.


예전에는 참신했으나 지금은 타락한 한 미학자가 있다. 그는 어느 강연에서 미술사와 작가의 관계를 조류학자와 새의 관계에 비유했다. 작가들은 미술사를 알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알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는 작가가 선택할 일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에게 동시대는 개념예술과 미디어아트의 시대이다. 내가 사랑하는 송창식의 노래 „새는“ 이 생각난다. „새는 노래하는 이유도 모르면서 자꾸만 노래를 한다. 새는 날아가는 곳도 모르면서 자꾸 날아간다“. 그 미학자와 송창식의 차이가 바로 이런 것이다. 이게 세상을 바라보는 수준의 차이이다. 우리는 한순간 무언가에 사로잡히고 이유도 모르면서 계속 노래하고 날아가는 새들이다.


내가 “100개의 인물 프로젝트” 얘기를 꺼냈을 떄 다양한 반응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의 인상적인 반응은 „나는 내 초상화를 안살 지도 몰라“ 였다 나는 „네게 내가 안팔지도 몰라“ 라고 답했다. 또 한 친구는 모델들이 자기 걸 사가면 마케팅에 좋겠다고 했다. 나는 이런 반응이 있을까봐 조금 염려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인들에게 부담을 주는 프로젝트가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최근 류시화 시인의 페이스북 글에서 구원 같은 문장을 발견했다.

페르시아의 시인 루미가 말했다. „인간의 머리는 불확실함과 망설임이 뿌리내리는 장소이다. 사랑에 빠지는 것 말고는 이 망설임을 넘어갈 길은 없다.“

일단 나는 인물을 그리는 것과 사랑에 빠졌다, 아니 빠지기로 했다.

음악가가 자신의 악기 소리에 매혹되지 않고 어떻게 심연의 연주를 하겠는가. 지금은 내 모델들이 내겐 무척 다양하게 아름답다. 사랑에 빠지지 않고 어떻게 그 대상을 이렇게 오래볼 수 있단 말인가. 아니 그 반대로 오래 보고 있으면 사랑하게 되고 만다. 그러므로 내 처음 의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지금은 다른 방도가 없다. 이 길 위에서 무언가를 또 발견하게 되지 않겠는가?

www.eunjin.com, Instagram: eunjin_kim_cavegn


이 글은 바젤에서 활동하는 화가 김은진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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