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oungmiyou

김나지움 학생 아빠의 김나지움 수습기간 극복기 (2부)

Tages Anzeiger 12.02.2019 – 편집 Paula Scheidt

1부는 3월24일 업데이트


스스로 사고하는 법이 요구되다

9월 중순 드디어 많은 시험이 시작됐다. 시험 하나가 끝날 때마다 게시판 리스트에 줄을 그어 지워 나갔다. 아내는 이런 목적으로 김나지움 학생을 위해 만들어진 앱에 점수를 입력해 넣었다.


김나지움에 오는 아이들은 초등학교에서 늘 성적이 좋은 편이었다. 보통 5-6점은 받았다. 김나지움에서 받는 점수는 그보다 평균 1.5점 정도 낮다. 그 점수에 실망하기도 한다.

한 번은 로타가 불어 시험에서 5.8 점을 받아 왔다. 대박! 아이는 기뻐했고, 최소한 오늘 저녁만큼은 공부하지 않아도 될 만하다고 생각했다. 행복하게 책 하나를 들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이를 따라가며, 내일은 영어 시험이 있으니 오늘은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는 나에게 소리 질렀다. „내가 오늘 불어 시험에서 5.8을 받아왔잖아!“. 나는 그 점수가 내일 시험과는 별개라는 것을 상기시켜야 했다.


지리 과목은 학습 목표가 아주 끔찍했다는 기억이 난다. 로타가 시험 전에 45개의 학습 목표가 적혀있는 리스트를 받았다. 선생님은 그 리스트를 노란 종이에 프린트했는데, 그러면 조금은 호의적으로 보이겠거니 생각했을 것이다.


다양한 기후대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


지도를 보고 다양한 지형을 식별한다.


1:25,000의 축척 지도에서 4cm 가 실제는 얼마나 긴 거리인지 안다.


주요 토양생성인자를 안다.



등등. 어른이 되면 지리 같은 과목에서 배운 지식은, 자기 직업과 관련있지 않으면 보통 다 잊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로타의 지리 학습 자료를 들여다봤는데, 기이하게도 호기심이 발동했다. 로타는, 왜 태양이 남북 회귀선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뭐라고 대답해나? 보통 노트북을 아이 앞으로 밀며, „구글로 찾아볼래?“ 라고 하겠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그런 경험이 없다. 그래서 내가 직접 구글 검색을 했다. 수많은 사이트가 학술적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김나지움의 기후대“라는 검색어로 찾아보는 게 낫겠다는 걸 알아챘다. 곧 다른 학교의 수업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열심히 자료를 들여다보며 설명하려고 애썼다.


물론 로타는 선생님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리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질문이 늘어갔다. 교육에 기회균등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부모가 회귀선에 관한 정보를 어떻게 찾는지 알 수 없다면, 그 아이는 같은 기회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집안에 팽팽하게 긴장된 분위기가 스멀스멀 감돌기 시작했다. 어떤 저녁에는, 우리가 요양원에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항상 조용히 움직여 다녀야 했다. 누군가는 내내 „쉿!“ 소리를 냈다. 로타 동생에게도 그랬다. 소란스러운 것은 모두 금지였다. 작은 애에게 자주 이렇게 말했다. „ 학교 끝나고 친구들을 우리 집에 데려오지 말고 네가 친구 집으로 갈 수 있니? 로타가 공부해야 해.“


11월 9일 중간 성적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잘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따로 편지를 받게 된다고, 학부모 공지에 나와 있었다. 로타의 성적을 알았지만, 그래도 긴장이 됐다.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한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는지는 아마 문화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내 가족은 지중해에 뿌리가 있고, 그 문화에서는, 자식을 위한 것이라면 거의 모든 것을 한다고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스칸디나비아 부모들보다는 훨씬 많이 한다. 대강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인데, 나는 이 주제를 가지고 스웨덴 친구들과 토론한 적도 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아마 좀 더 이성적일 것이다. 진보적인 교육가들이 이런 자세를 지지한다. „아이가 똥을 밟도록 놔둬라. 그건 중요한 경험이다. 아이도, 내가 공부하지 않으면 나쁜 점수를 받게 된다는 걸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자식 없는 밀레니엄 세대가 아무리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 통제에 너무 유난 떤다“라고 신문에 끊임없이 써 댄다 해도 난 내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다.


수습기간 동안 로타도, 나도, 괴로웠다. 물론 버틸 만 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쿨하다는 게 과대평가되는 것 같다. 집착을 좀 가지면 어떤가? 결국 중요한 것에 관한 문제지 않은가. 하지만 정말로 쿨한 부모들도 있다. 같은 상황에 처한 부모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떤 사람들은, 부정적인 경험도 아이들에겐 중요하다, 그것 때문에 내가 심란할 필요는 없다, 라는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나는 가끔 이런 부모들이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것이라고 의심한다. 아이에게 압력을 행사한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유행에 뒤떨어져 있으니까, 그저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나는 의심한다.


물론, 그건 내 문제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 아이가 어쩌면 생전 처음 커다란 실망을 겪을 수도 있다. 인생은 길고, 그것 아니라도 실망할 일이 가득한데, 왜 12살에 벌써 그 첫 경험을 해야 하나?


요나스 아빠가 그런 쿨한 타입이다. 그는 항상, 그냥 쉽게 생각해, 라고 말한다. 요나스는 불어와 라틴어 성적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특히 이 과목들은 아이가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과 시험 결과 사이의 상관관계가 높다. 외국어를 공부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지금 5시 15분이니까 6시 45분에 방에서 나와, 그 전엔 안돼. 우리가 자주 이렇게 했다. 아내나 내가 집에 있으면서 로타에게 차를 끓여 갖다 주거나 딸기쨈 도넛츠를 사러 빵집에 가곤 했다. 룸서비스가 있는 요양원이었다. 하지만 요양원은 원하면 누구든 떠날 수 있으니까, 우리의 경우는 오히려 감옥과 비슷하다고 해야겠다.


김나지움 입학시험에 관한 첫 텍스트*에서 내가 묘사했던 그 모든 고난의 시간에 대해서는 그래도 최소한 보상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쨌든 딸아이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덕에 공립 인문 중고등학교에 붙었으니까. 그러니 난, 아이 공부를 위해 함께 난리법석을 떠는 게 쓸데 없는 짓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가끔 아이들은 힘들어한다. 원래 그렇다. 하지만 나는 아이 옆을 지키는 동시에 아이가 더 공부할 수 있도록 고집하는 게, 오직 아이들에게 엄격하지 않기 위해 자기 책임에 대한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 나이대의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


어떤 아이들은 하차한다

11월 9일이 됐고, 로타는 편지를 받지 않았다. 우리는 크게 안도했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 뭔가를 알아내는 일은 정말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아이가, 파트리시아는 편지를 받은 것 같아, 라고 말했다. 로타와 초등학교를 함께 다녔고, 김나지움 시작부터 어려움을 겪었던 요나스도 편지를 받았다. 11월 말엔 몇몇 아이들이 자진해서 하차했다. 어느 날부터 아이들이 그냥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 점수가 너무 낮아 더 이상 따라가기 어려운 게 아닐까 추측했다.


얼마 되지 않아 로타는 김나지움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반 친구들도, 선생님도. 실제로 아이는 학교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노트를 찢어버리거나 아이를 칠판 앞에 세워 망신을 주는 가학적인 교사 타입은 다행히 멸종한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수습기간 마지막에 몇명의 아이들이 나가야 하는 지 정해진 숫자는 없다는 학교의 말을 믿는다. 어떤 반에선 4명이 학교를 떠나야 하지만, 한 명도 나가 떨어지지 않는 반도 있는 것이다. 입학 시험을 준비하면서 공부했던 시간을 수습 기간과 비교하자면, 시험 준비 때의 두려움이 더 컸다. 당락이 한나절 안에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모로서 그렇게 가혹한 압박을 받은 게 처음이었으니까. 그와 달리 몇 달 동안 이어지는 수습 기간 동안엔 체력 소모가 심했다.


한번은 한 친구를 만났는데, 내가 수습 기간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는 곧바로 자기 아들도 작년에 같은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당시에 그는, 아이가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자신을 누르기도 해 우울증에 빠졌다고 했다.


누구나 알다시피 부부는 싸운다. 또 누구나 알다시피 굉장히 자주 아이들 문제로 싸운다. 나와 내 아내는 이 수습 기간만큼 많이 싸워본 적이 없다. 신경이 늘 곤두서 있었다. 아이가 오늘은 어때? 창백하지? 아침은 먹었나?


밤에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옆에 누운 아내가 걱정하는 소리를 들었다. 갑자기 자식이란 얼마나 엄청난 책임인지 깨달았다. 로타가 신생아였을 땐 아기가 혹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존적 두려움을 가졌었다. 3살 이후, 아이가 슬슬 단단해지면서 좀 나아졌다. 갑자기 이런 깊고 동물적인 두려움이 다시 생겨났다. 심지어 나랑 관계가 좋지 않은 내 어머니를 일종의 존경심을 갖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습 기간 동안 어머니와 새 아버지는 내 옆을 지키셨다.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아이가 김나지움에 가지 않는 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물론 아니다. 2원 교육 시스템은 스위스의 최고 업적이다. 또한 일반 중학교를 2년 다닌 후에 김나지움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혹은 완전히 다른 길로 가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자기 자식이 그런 압력에 내맡겨져 있는 순간엔 아이의 두려움을 함께 나누게 된다. 수습 기간 중 우리는 로타에게 자주 물었다. 학교 가는 것이 좋니? 아이는 늘 확신에 차서 대답했다. 응.


똑똑해지는 느낌

수많은 시험이 좋은 결과를 낳기도 했다. 로타가 적응한 것이다. 부모는 이상하게도 거기에 적응이 잘 안 된다. 가끔 재미있는 상황도 있었다. 어느 토요일 저녁, 이제 충분히 공부했어, 라는 생각이 들면 우린 함께 TV 를 보기도 하는데, 그러면 로타는, „저 MC는 말을 틀리게 해, 계속 잘못된 격변화를 사용해.„ 아이에게 지적인 속물근성이 생겨났다. 아이는 소셜 미디어에서 퍼지는 허튼소리를 금세 알아챈다. 예를 들어contemlare에서 나온 < kontemplativ 관조적인>라는 단어처럼 라틴어 뿌리를 가진 독일어 단어를 구별한다. 부모는 무언가 벌어지고 있음을, 아이의 호기심이 충족되고 있음을, 물 컵에 들어있는 종이꽃처럼 뇌가 피어나고 있음을 알아챈다.


우리가 수습 기간 동안 아주 괴로워했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하지만 우리 딸도 그렇게 괴로웠을까? I don’t know. 아이가 자신을 대견하게 여긴다고 나는 믿는다. 김나지움에 다닌 지 두 달쯤 됐을 때 아이가 말하길, 초등학교를 1년 내내 다녔을 때보다 지금 훨씬 똑똑해진 것 같아.


로타가 알아챈 게 또 있다. 선생님들이 진짜 잘 알고 있다는 것. 수학 선생님은 초등학교 때 선생님과 달리 수학을 전공했다. 생물 선생님은 생물을 전공했고. 로타는 어떤 면에서 선생님들을 존경한다. 생전 처음으로 책이 중요해졌고, 사고가 중요해졌다. 학생들은 처음으로 레클람 출판사 책들을 읽고 19세기 계급의 차이에 대해 토론을 한다. 로타는 수업을 어렵지만 잘 따라가고, 선생님들이 해주는 위트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어떻게 보면 김나지움은 이미 아이의 두 번 째 집이 된 거나 다름없다.


12월이 되자 받아오는 점수가 많아졌고, 나는 평균을 계산하기 시작했으며, 곧 로타가 마이너스 점수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1월에 있는 마지막 시험들은 꼭 그렇게 잘 봐야만 하는 건 아니었다. 내 계산이 틀리지만 않는다면, 이제 로타가 사실 시험을 망쳐도 괜찮다는 걸 알았을 때 우린 공부를 그만할 수도 있었지만, 우린 여전히 아이와 열심히 공부했다. 동시에, 갑자기 로타가 완전히 스스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성공하고 싶어 했고, 수업 내용에도 흥미를 보였다.


옛날 영화에 가끔 이런 마지막 장면이 있다. 부모가 „이제 우린 딸을 시집보냈구나.“ 또는 „우리가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구나“ 라고 말하는 것이다. 조금은 이런 기분이다. 자기 인생의 이정표는 자식의 이정표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들어갈 때 한 번의 이정표가 있었고, 김나지움 들어가면서 이제 다음 이정표가 있다. 학위 규정이 변하는 게 아니니,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로타는 낙오될 수 있다. 하지만 난 최선을 희망한다.


2월 4일 학교에서 편지가 왔다. 로타는 수습 기간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이제 최종 합격했다. 앞으로 김나지움에서의 6년이 아주 빠르게 흘러가리라는 것을 안다. 로타는 점점 더 우리에게서 멀어질 것이고, 지적인 독립성을 얻음으로써 멀어지는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언젠가 아이는 마투라(졸업 인정시험)를 보게 될 것이고, 그러면 아이 앞엔 많은 길이 열릴 것이다. 꼭 대학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아이는, 올 8월 교정에서 신입생들에게 물어볼 날을 고대하고 있다. „야, 무슨 기간이라고?“


윗글은 Tagesanzeiger의 허가 하에 번역한 것이며 원본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www.tagesanzeiger.ch/leben/gesellschaft/Was-isch-fuer-Ziit--Probeziit/story/10047422


* 지난 2018년 3월 Tages Anzeiger 의 주말 별책 <Magazin>에는 이 수습기간 극복기의 전 이야기 «김나지엄 입학 시험 준비 기간 극복기»가 실렸습니다. Tagesanzeiger의 허가가 나면 그 이야기도 번역해 올리겠습니다.

조회 43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