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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장 없이 통치하다

최종 수정일: 2018년 12월 4일

대학을 다니지 않았지만 연방 각료가 되다

예전에는 법전공자들이 연방위원회 의석을 압도적으로 차지하였다. 다가오는 해에는 처음으로 전통적인 엘리트 교육 과정을 밟지 않은 연방 각료가 많아질 수도 있다.  

1987년 오랫동안 스위스 스키 연맹의 의장이자 Intersport 총 책임자인 아돌프 오기(Adolf Ogi)가 연방 각료가 되려고 했을 때, 한 가지 사실이 그를 불편하게 했다. 아돌프 오기가 베르너 오버란트(Berner Oberland)에 살았을 때 푸루티겐(Frutigen) 중학교 입학시험에 실패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내가 지적인 면에서 연방 각료가 될 수 없다고 했죠” 올 여름 스위스 한 방송에서 76세인 오기가 이렇게 회상했다. 그가 연방 의회에서 목적어를 잘못 사용했을 때마다 논란거리가 되었다. 그래서 오기는 혼란을 더 가중하기 위해 일부는 영어로 말하기도 했었다.

교육 경력(Bildungskarriere)은 개인의 스토리이다.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졌거나 1년 유급을 한 사람은 이러한 일이 꼬리표처럼 오랫동안 따라다닌다. 그리고 이 사실은 다른 사람보다 당사자가 느끼는 괴로움이 더 큰 법이다. 스위스 정치에서는 모든 이력을 가진 사람들을 허용한다. 즉 근로자이건 교수이건 상관없이 모든 국민들에게 정치의 문이 열려 있다. 근면, 도덕 그리고 참여는 졸업장이나 직함보다 더 중요하다. 스위스 국민당(SVP) 소속의 아돌프 오기는 중학교 졸업장이 없음에도, 아니 오히려 그런 까닭에 국민들의 지지를 더 많이 받았다

만약 12월 5일 연방 총회에서 스위스 자유민주당(FDP)의 카린 켈러 수터(Karin Keller-Sutter)를 선출한다면, 연방위원회는 1월부터 전통적인 아카데미 교육을 받지 않은 각료들이 더 많아진다.  스위스 국민당 소속의 우얼리 마우러(Ueli Maurer)는 농부의 아들로 중학교 졸업 후 사무직 직업교육을 받았고, 20년 동안 한 농업 협동조합의 조합장으로 일했다. 스위스 국민당의 기 파르믈랭(Guy Parmelin)는 라틴어 B 마투라(*Matura)를 받았지만 농장경영자를 위한 직업교육을 다시 받았으며, 1985년에는 «포도 재배 관리자» 라는 국가 공인 자격증을 받았다. 스위스 사회민주당 소속의 시모네타 소마루가(Simonetta Sommaruga)는 B 마투라를 했고, 루체른 음악원에서 콘서트 피아니스트 과정을 이수하고 로마와 스탠퍼드에서 추가 교육을 받았다. 대학에서 여러 학기 동안 스페인 문학과 영문학을 했지만, 학위는 없다.



4대 3

스위스 자유민주당 소속의 카린 켈러 수터는 원래 콘퍼런스 동시통역가이다. 그녀는 인문 고등학교 졸업장인 마투라도 없고 단지 노이엔부르크(Neuenbrug)에서 상업 자격증(Handelsdiplom)을 받았다. 그 뒤 취리히에 있는 통번역 학교(Dolmetscherschule)에 재학했고 과정을 이수했다. 이 학교는 현재 응용과학대학교 ZHAW의 한 학부이다. 1996년 카린 켈러 수터는 프라이부르크(Freiburg) 대학의 교육학부에서 언어교사 자격증을 받았으며 직업 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4대3: 아카데미 졸업장을 가진 각료는 소수에 속할 것이다. 스위스 자유민주당(FDP)의 이그나지오 카시스(Ignazio Cassis)는 의사이고, 스위스 사회민주당(SP)의 알랭 베르세(Alain Berset)는 경제학 박사이다. 법률가인 기독교 국민민주당(CVP)  도리스 로이타르트 (Doris Leuthard)의 후임으로 누가 될지 알 수 없다. 공천을 받은 비올라 암헤르트(Viola Amherd)는 법률 사무소의 공증인이고, 하이디 차크라겐(Heidi Z’agraggen)는 정치학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다.

"학위가 없거나 인문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는 사람이 연방위원회에서 각료가 되는 사례는 지금까지 너무 적었어요" 라고 취리히 법대 교수이자 아라우(Aarau) 민주주의 센터 소장인 안드레아스 글라저(Andreas Glaser)가 말한다. 우얼리 마우러나 어쩌면 곧 카린 켈러 수터와 같은 사람이 연방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은 «민주적으로 요구되는 다양성»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자신의 관점을 보여줄 수 있고 «직업에서 오는 사회 계층 또는 가짜 엘리트»의 출현을 막을 수도 있다. 

"고위급 직책에서는 형식적인 직업교육이 인사 공천의 우선 조건이 아니라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라고 글라저는 말한다. 만약 그렇게 되면 정치 혐오와 위험한 대중주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포도 재배자, 사무원, 피아니스트, 통역가: 아주 다양한 색깔의 직업들이다. 후보로 공천을 받은 켈러 수터는 인터뷰에서 자신은 쌍갈렌주 주정부 각료로 12년이나 근무했고 원래 직업인 동시통역가로 활동한 것보다는 정치부문에서 활동한 기간이 더 길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제는 뭐가 주업이지 확실히 단정하기 힘든 정도예요" 

켈러 수터는 오랫동안 쌍갈렌주의 안전 및 사법부의 기관장으로 근무하면서 의심할 여지 없이 법대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경험을 쌓았다. "저는 현장에서 기술을 익혔다고 할 수 있죠".

이러한 행정 실무 경험은 연방 각료 선거에서는 다른 직업적인 배경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역사학 명예 교수이자 연방위원회 전기 사전 편집자 우르스 알터마트 (Urs Altermatt)가 말한다. 파르믈랭, 소마루가 그리고 마우러는 선거 이전에 전부 지자체(Bursins VD, Köniz BE, Hinwil ZH) 의장이었고 그 뒤에 주정부와 연방의회 의원이 되었다. 마우러는 정당 대표직을 맡기도 했다.

오늘날 응용과학대학이나 음악원이 어떻게 «아카데믹 하지 않다»는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이러한 대학의 졸업생들은 법학자나 경제학자는 아닐 수 있지만, 고등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다. 스위스의 권력과 부에 관한 기준을 저술한 사회학 명예 교수 우얼리 메더(Uerli Mäder)는 "연방 각료의 사회적 지위는 이러한 직업의 다양화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모두 높은 지적 수준을 갖추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그러해 왔다. "1848년부터 지식인들이 연방위원회를 장악했어요" 라고 역사학자 우르스 알터마트는 말한다. 특히 연방국가가 건설된 직후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당시 연방각료들은 직접 손으로 법들을 적었어요". 수도 베른(Bern)에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이것은 1943년 최초로 연방 각료를 배출했던 사회민주당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알터마트는 과거에 사회민주당이 교수가 아닌 노동자를 중앙정치권으로 내보냈다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이것은 단지 «허구적 신화»일 뿐이라고 말한다. 에른스트 놉스(Ernst Nobs, 연방 각료 1943-1951)는 그린델발더의 숙련 재봉사 아들이었지만, 교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었고, Volksrecht라는 신문사의 저널리스트였었다. 막스 베버(Max Weber, 연방 각료 1951-1953 )는 국가 경제학의 박사였었고 베른 대학교에서 강사로 근무했다. 취리히의 빌리 스퓔러(Willy Spühler, 연방 각료 1959-1970)는 경제학 학위를, 바젤의 한스 페터 츄디(Hans-Peter Tschudi, 연방 각료 1959-1973)는 법학 교수였고, 오토 슈티히(Otto Stich, 연방 각료 1984-1995)는 정치학 박사이다. 난방 기사 빌리 리트샤르트(Willy Ritschard, 연방 각료 1974-1983)는 대학을 다니지 않았고 이는 사회민주당에서도 하나의 예외였다.


거의 법학자

요즘 새로운 것은 법학자들이 연방위원회에서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약25년 전부터 이들의 우세가 사라지고 있어요"라고 역사학자 알터마트는 말한다. 현재 도리스 로이타르트는 연방위원회 각료 중에서 유일한 법학자이다. 그녀가 연방 각료를 그만두게 되면 «연방 위원회가 법적 양심을 완전히 상실» 하게 될거라며 벌써 «마지막 법학자» 타령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근심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다. 시모네타 소마루가와 같은 연방 각료는 법무부 장관으로 오래전부터 거의 법학자가 다 되었다. "그녀는 «Arena»라는 정치 방송의 토론에서 법학자 못지 않는 더 날카로운 법적인 논쟁을 벌였어요"라고 사회학자 우얼리 메더(Ueli Mäder)는 말한다.

다양한 지식인들이 연방위원회에 늘어나는 것은 연방의 역사학자 알터마트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이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죠: 예전에 사람들은 목사나 의사 아니면 법학을 공부했었습니다"라고 알트마트는 말한다. 오늘날은 전공들이 매우 다양해졌고, 이러한 경향은 연방위원회의 인력 구성 -경제학자, 정치학자, 엔지니어, 기업가- 에도 당연히 반영될 수 밖에 없다.


스위스 정치에는 법률가들이 많다

오랫동안 정치계에서 많은 법학 전공자가 활동하고 있는 것은, (아직도 의회에는 이러한 경향이 있지만), 법학이라는 전공의 특성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문서, 법률, 법조문에 친숙하고 법해석에 익숙한 점, 또한 이 분야 전공자들의 야망과 창의적 성향 등이 정치활동에 강점이 된 것이다. 법학 교수인 데보라 로드(Debora Rhode)는 자신의 저서 «Lawyers as Leaders»에서 미국에서는 법학이 그 어떤 다른 전공분야보다 더 많은 최고위급 정치가들을 배출했다고 언급한다. 백악관에 광산 기술자인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나 배우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en)과 같이 전공 분야와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들어오긴 했지만, 지금까지 45명의 미국 대통령 중에서 26명이 법학자였다. 

종종 미국의 유명한 로스쿨의 졸업생들이 학연으로 최고위직에 승진하기도 한다. 이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법분야의 교육과 실무에서는 "대인관계 능력과 윤리적 단호함이 성공적 리더십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있다"고 로드는 미국의 법분야에 대해 기술한다. 법학 전공자들은 권력을 얻지만 그들이 이러한 권력을 감당할 능력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스위스에서도 법전공자들이 정치 분야의 고위직을 차지하는 비율이 다른 직업군에 비해 높은 편이다. 하지만 법학자가 전형적인 지도자 스타일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면, 이렇게 일반화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취리히 대학 법학 교수 안드레아스 글라저(Andreas Glaser)는 말한다. 그는 법률가가 «기본적으로 객관적이고 정확한 구조와 명확한 원칙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것에는 수긍하지만, 그와 동시에 «감정적인 요소»가 때로는 부족하다는 점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법학자들도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연방 각료로서 이상적인 후보들이다. 


*마투라: 대학 수학 능력을 인정하는 고등학교 졸업장


윗글은 Tagesanzeiger의 허가 하에 번역한 것이며 원본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www.tagesanzeiger.ch/schweiz/standard/regieren-ohne-zu-studieren/story/23647954

David Hesse, Tages-Anzeiger, 22. 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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