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인

박물관은 살아 있다

국립박물관 (Landesmuseum) 의 기획 전시 „희생양 (Sündenbock)“

The Scapegoat (Der Sündenbock) William Holman Hunt (1854)

„박물관은 살아 있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밤이 되면 박물관 속 전시물들이 살아서 움직인다는 공상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실제로 요즘 박물관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기존의 전시 방식을 뛰어넘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실현방식이 감탄을 자아내고, 전시회의 기획과 구현 그 자체가 고도의 창의적인 작업임을, 그것이 훌륭한 결과로 이어지면 예술적 수준에도 이를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그런 전시회도 점점 더 자주 만나게 된다. 필자는 지금 취리히의 국립박물관 (Landesmuseum Zürich) 에서 진행 중인 기획전시 "희생양 (Sündenbock)“이 그 한 예라고 생각한다.


현장의 충격 한 조각이 눈 앞에


낡고 진부한 것을 보면 박물관에 들어 갈 만한 것이라고들 말한다. 박물관의 전시물이라 하면 그냥 거기 먼지 앉을 때까지 내버려 둬도 상관없을 것만 같다. 전시물에 생기가 없을 때, 눈에 보이는 사연이 없을 때 이야기다. 흔히 유골을 전시할 때는, BC 몇 세기, 어느 지방에서 출토, 무슨 연대에 속함이라는 정보가 깔끔하게 적힌 안내문을 적어 두는 것 정도가 보통의 방식이다. 그리스 무슨 섬의 조각상 박물관이나 경주의 여느 박물관에서 주체할 수 없이 많은 유물을 보여주면서 많다고 자랑하고 싶어할 때 흔히 보는 풍경이다. 그럼 우리는, 아 그런가 보네, 빨리 보고 가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깨어진 머리쪽 유골이 깨진 뼛조각과 함께, 오롯이 조명을 받는 독립된 유리장 안에 들어 있고, 오디오 가이드에서 으스스한 음악과 함께 어느 시대 흉년이 들었을 때 마을 사람들이 희생제물로 정하는 바람에 살해당한 아이의 유골이라고 하면, 그 당시의 충격과 감정이 몇 천년 지난 지금 그 깔끔한 유리장 앞에 서 있는 나에게 직접 전달될 수밖에 없다. 그 유골의 턱선을 보면서 그 아이가 얼마나 가녀린 턱을 가진 작은 아이였을까 그려보면서, 희생양이라는 이 전시회가 전하고자 하는 개념이 필터링 없이 바로 내 속에 꽂히는 것이다. 이 뼛 조각은 그냥 유적지에 굴러 다녔던 뼛조각 하나가 아니라 그 날 그 현장의 충격 한 조각이 된다.


공간, 청각, 스토리


이 전시회의 영리한 점은 공간적, 청각적, 스토리적 요소를 적절히 활용한 것이다. 이 전시장으로 가려면 먼저 좁고 힘든 계단을 꽤 많이 올라가야 한다. 이 공간을 거치면서 몸과 마음이 불편하게 된 상태에서 전시가 시작된다. 관람객은 무조건 큼직한 헤드폰이 달린 오디오 가이드를 사용해야 한다. 첫 전시물부터 건조하고 단조로운 타악기가 청각세포를 두드린다. 역시 불편하다.

이렇게 불편하게 시작된 전시는 기승전결이 있는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진다. 가장 오래된 유물부터 시작해서 사회의 불안이 개인에 대한 폭력으로 연결된 희생양 스토리들이 이어지면서 나중에는 현재의 사례들에 도달한다. 인터넷에서 따돌림 당해 자살에 이른 소년의 이야기에 이르면 이 주제는 박물관에 속한 이야기가 아니라 최고의 현재성을 띤, 나의 지금 판단을 요구하는 주제로 발전해 있다.

전시의 마지막 공간은 라운지처럼 편안히 둘러 앉아서 근사하게 묶여진 시집을 천천히 풀어서 읽어 보게 되어 있다. 오디오 가이드는 아름답고 따뜻한 바흐를 들려준다. 전시회에서 받은 충격과 고민이 가시기 전에 천천히 곱씹어 보면서 스스로 생각해 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헤드폰을 반납하고 접하는 공간은 넓고 높게 트인, 재미난 모양의 창에서 햇살이 비추는 밝고 평화로운 감싸는 듯한 계단 공간이다.

불편하게, 과거 폭력의 장면으로 시작됐던 전시지만, 그것을 마주하고 내 속을 마주하고, 성찰해 본 다음에는 평화를 돌려받고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해피 엔딩! 모두가 좋아하는 구조다. 근사하게 성공했다고 칭찬할 수밖에 없는, 그 메시지 때문이라도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전시회이다.


전시회 정보: https://www.nationalmuseum.ch/d/microsites/2019/Zuerich/Suendenbock.php

조회 14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