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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국적을 갖고 있어도 늘 받는 질문 «어디서 왔어?» - 복수 국적에 대해

Einfach Politik - RADIO SRF Echo der Zeit


스위스 국적을 갖고 있어도 늘 받는 질문 «어디서 왔어?» - 복수 국적에 대해


지난 9월 의회의 가을 회기가 진행되고 있을 때 연방의회 건물 앞 광장에서는 기후 운동을 하는 청소년 수백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허가를 받지 않고 광장에서 밤을 지새웠고, 일주일간 시위를 하겠다고 했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 많은 미디어에 둘러싸인 스위스 국민당SVP 하원 의원 안드레아스 글라르너Anderas Glarner와 녹색당 하원의원 시벨 아르슬란 Sibel Arslan이 부딪혔다.


«아르쉬란씨Frau Arschlan, 이곳은 법과 질서가 있는 곳입니다. 당신네 나라에는 그것이 없겠지만요.» * 이름 발음을 아르슬란 대신 아르쉬..로 발음한 데서 큰 비난을 받았다. Arsch [arʃ] 1. 궁둥이2.얼간이, 멍청이 (네이버 사전에서)라는 뜻을 가진 욕이다. 나중에 의도는 없었다며 사과를 하기는 했다.


«지금 한 말 취소하세요»


«있어요? 당신네 나라에 법과 질서가 있다는 말입니까?»


«무슨 나라요? 난 스위스인입니다»

* 바젤 시민에 의해 두 번이나 선택받은 재선 의원인 아르슬란은 1980년 터키에서 태어나 91년 11살의 나이로 바젤에 왔으며 2004년에 스위스 국적을 받았다.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이 장면에서 욕만큼 주목받지 못했던 것은, 이 장면이 90년대부터 이어진 «이중 국적자들을 진짜 스위스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논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스위스에서 이중 국적자는 스위스인과 같은 권리를 가진다. 투표를 할 수도 있고, 선거에 출마할 수도 있다. 하지만 30 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인이 스위스인이 되려면 자신의 원래 국적을 포기해야 했다. 이후 지금까지 이중 국적 문제는 여전히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28살 취리히에 사는 저널리스트 이보나 도마쳇은 스위스 여권과 크로아티아 여권을 갖고 있지만, 크로아티아 여권을 서랍에서 꺼낼 일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전 항상 스위스 여권을 들고 다녀요. 알게 모르게, 그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거죠. 스위스 여권을 보여주면 세계 어디에서든 대우를 더 잘 받아요. 물론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무시할 수가 없네요. 심지어 내 고국인 크로아티아에서도 스위스 여권을 보여 주면, 뭔가 내가 더 좋은 걸 갖고 있다고 느끼게 돼요. 일종의 특권 같은 거요. 정말 말도 안 되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자신이 크로아티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건 그냥 나 자신의 일부인 거예요. 가끔 잊어버리기는 하는데, 국경을 넘어 크로아티아에 도착해 숨을 한번 깊이 들이쉬면, 곧바로 내가 집에 돌아왔다고 느껴요. 왜인지 설명은 못 하겠어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성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


우리는 이보나에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월드컵 축구 경기 때 어느 나라 편일까?


«축구엔 정말 관심이 1도 없어요. 내 일상이나 현실과 먼 이야기죠. 하지만 몇 년에 한 번씩 그런 일이 생기면, 나는 크로아티아 모자를 쓰고 거리로 나가요.»


축구와 관련된 질문이 그녀를 짜증 나게 했다. 자주 받는 질문인데, 이 질문은 마치 함정 같다는 것이다.


«내가 월드컵 때 크로아티아 편이라고 답하면, 넌 진짜 스위스인이 되는 데 관심이 없구나, 라고 말해요.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중 국적과 축구. 2018년 월드컵 때 스위스와 세르비아 간의 경기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동점 골을 넣었던 스위스 국가대표 그라닛 챠카Granit Xhaka 는 골 세레머니로 코소보 알바니아의 상징인 더블 독수리 제스처를 취하며 세르비아를 향해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도발을 했고, 이후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이중 국적 문제가 논란의 중심이 됐다. 당시 스위스 축구 협회 사무국장은 국가대표 선발에서 이중 국적자를 진짜 선발해야 하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지한 논의로 이어질 수는 없었다. 당시 월드컵 경기를 뛴 11명의 선수 중 8명, 75%가 이중 국적자였기 때문이다.


현재 스위스에 사는 사람 중 18%, 약 백만 명 정도가 복수 국적자다. 15세 미만인 아이들과 외국에 사는 스위스인은 포함되지 않은 숫자다. 이웃 나라에 비하면 많다. 독일은 공식적으로 발표된 복수 국적자의 숫자가 2.4%이고, 오스트리아는 지금까지 오스트리아 국적 이외의 국적을 갖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발표된 숫자가 없다.



스위스에서 시민권이 중요한 이슈로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즈음이다. 냉전 시대가 끝이 났고, 유럽 연합이 아직 유럽 공동체였지만 서로가 가까워지던 시절, 스위스는 그에 대처하는 나름의 처신법을 찾고 있었다. 사실 1989년 가을과 1990년 3월 사이에 벌어졌던 시민권 논쟁에서 중요했던 테마는 남녀평등에 관한 문제였지만, 당시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족을 만들고 자녀를 낳아 기르며 정착했던 때이기도 했다. 그 자녀들은 부모의 고국보다는 스위스인에 자신을 동일시했다. 그때 이중 국적이라는 새로운 신분이 정치적 아젠다로 등장했다.

1989년 9월 25일 하원에서 스위스 사회당 SP 의원 파울 레히슈타이너 Paul Rechsteiner는 두 국가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이중 국적권»에 대해 이렇게 변호한다.


«이중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고국뿐 아니라 오랫동안 살며 일하는 이 나라에도 강하게 동일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그를 지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보수정당 의원들은 반대편에서 연합했는데, 1989년 가을 기독교 국민당 CVP의 베다 훔벨 Beda Humbel의원은 그 이유를 이렇게 들었다.


« 스위스 시민권 신청자라면 스위스와 훨씬 더 많이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스위스 정체성이 그전까지 고국이었던 나라의 정체성보다 더 커야 합니다.»


당시 너무 급진적이어서 몇 년은 돼야 다수의 지지를 얻을 것 같던 이중 국적에 관한 논쟁은 얼마 되지 않아 반전을 맞게 된다. 그런 반전에는 시민권을 획득해 스위스에 귀화하려는 사람의 숫자가 줄었다는 등의 통계적인 이유를 포함해 여러 이유가 있는데, 무엇보다 경제계의 압력이 거셌다. 유럽 국가들이 서로 가까워지며 함께 성장하는 것을 염두에 둔 경제 연합회들은 이중 국적제를 요구하는 편지를 연방위원회에 썼다. 유럽인들에게 스위스에 귀화하면서 자신의 국적을 포기하도록 하면, 그들, 외국인 노동자들을 잃게 될 것이라고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런 배경으로 1992년부터 효력이 발생하는 이중 국적제 규정이 생겨났다.


이보나 도마쳇이 태어난 해 1992년, 이중 국적제 규정은 귀화의 붐을 일으켰다. 1991년 채 6천 명도 되지 않은 귀화인의 숫자는 1995 년 1만7천 명에 가까웠고, 2019년의 경우는 4만2천50명이었다. 이보나 도마쳇의 이야기는 백만 명 중 한 명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보나가 스위스 국적을 받으며 이중 국적자가 된 건 10년 전이다. 당시 그녀는 18살이었고, 그녀의 부모가 자녀들의 귀화를 바랐다.


«부모님이 딸들의 인생을 좀 더 쉽게 해주고 싶어 했습니다. 딸들은 어차피 스위스에 살 것이고, 스위스인이에요. 당신들은 8-90년대에 차별을 많이 받았고, 국적 때문에 장애가 생기는 것을 봤지만 딸들이 그러지 않길 바라셨죠. 그래서 귀화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셨어요.»


국적 때문에 생기는 장애로 이보나는 특히 직업 훈련생 자리 Lehrstelle를 찾으며 어려워했던 때를 꼽는다. 스위스 여권을 받기 바로 전, 16살이었던 그녀는 훈련생으로 일할 직장을 찾고 있었다.


«정말 많은 인터뷰를 했는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많았어요. 직업을 구하는 인터뷰에서 귀화에 관한 질문을 받기도 했어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아냐는 질문도 있었어요.»


국적란에 크로아티아가 아니라 스위스로 적혀있었으면 달랐을까?


«지금 뭐라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이점이 있었을 거예요. 스위스 여권을 받은 후에는 이력서 국적란에 스위스라고만 썼어요. 다른 국적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완전 멍청한 짓이지만... 크로아티아 사람이기 때문에 직업을 구할 수 없었다는 말이 아니에요. 당연히 구할 수 있지만, 더 어렵고, 더 오래 걸린다는 거죠.»


미국이나 캐나다, 약간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프랑스에서도 그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자동으로 바로 그 나라 여권을 받을 수 있다. 전문 용어로 유스 솔리Jus soli라고 말하는데, 그 땅에서 태어난 사람이 받는 권리라는 뜻이다. 스위스는 다르다. 스위스가 이중 국적제와 관련해 기수 역할을 하는 것은 맞지만, 스위스인이 되기 위한 장애는 높다. 그건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외국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3년 반 전 간소화된 귀화 과정에 관한 국민투표가 받아들여졌다. 당시 그 투표는 3세대에 관한 투표였다. 자신들뿐 아니라 부모 역시 이곳에서 나고 자란 3세대. 그들은 이제 스위스에서 좀 더 쉽게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보나같은 2세대는 여전히 복잡한 정규 과정을 거쳐야 한다.


2세대의 귀화를 쉽게 하자는 시도는 의회에서 1983년, 1994년 두 번 있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헌법 개정이 요구된다. 그래서 1994년 국민투표가 치러졌고, 53%의 유권자 다수가 찬성했지만, 15개의 칸톤과 1개의 반쪽 칸톤이 반대함으로써, 이중 다수 찬성이라는 요건에 미치지 못해 부결됐다. (이중 다수 찬성은 국민 다수의 찬성과 칸톤 다수의 찬성을 말한다.) 이는 스위스 여권이 스위스 사회에 융화되기 위한 결정적인 열쇠가 아니라, 적응을 잘 하면 받는 최종 보상이 되어야한다는 의견을 대변한다.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10년 이상 스위스에서 살아야 하고, 각 칸톤과 게마인데가 요구하는 상황과 기간을 충족시켜야 한다. 게마인데의 경우는 게마인데 총회에서 주민이 투표한다. 연방과 칸톤, 게마인데 세 단계의 과정에서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하며 돈도 많이 든다. 이보나의 경우는 5천 프랑이 들었고,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긴 과정이었다고 한다.


«범죄자가 된 느낌이 들었어요. 여기서 태어난 사람이니까 스위스 여권을 받겠다는 건데 뭘 그렇게 오랫동안 토론을 벌여야 하는 건지...»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칸톤과 연방에서 오케이 사인을 보내왔다.


«이후 게마인데 총회에서 우리의 시민권 문제가 안건이 되었어요. 무대에 올라가서 사람들 앞에서 우리를 소개해야 했죠. 말하자면, 제발 우리도 당신들 사이에 끼워주세요, 라는 부탁을 한 거예요. 그 후 주민들이 우리를 받아줄지 아닐지 투표를 해서 나중에 결정 사항을 알려 줬어요. 그 뒤 우리는 슈비츠Schwyz에 있는 칸톤 건물에서 스위스인으로 살겠다는 맹세를 했어요.»


그 지난했던 과정 중 최악은 귀화 시험이었다고 한다.


«필기시험과 구두시험이 가장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머릿 속에 남아있어요. 정말 멍청한 질문들이 던져졌거든요. 상상도 안 될 거예요.»


이를테면 이런 질문이다. 당신 가정에서 쓰레기가 나오면, 당신은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실 겁

니까?

a. 창밖으로 던져버린다. b. 숲에서 태워버린다. c. 유료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컨테이너에 버린다.


모든 문제가 이렇지는 않다. 원칙적으로 귀화 시험은 게마인데 재량으로,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은 없다. 시험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올해 연방 법원까지 간 사례가 있긴 하지만, 그건 예외적인 경우이고 최종 결정은 게마인데가 한다. 이보나는 당시 테스트에 합격했고, 통틀어 2년이 걸린 정규 귀화 과정을 거친 후 빨간 여권을 손에 넣었다.


«기뻤어요. 하지만 스스로 배신감도 느꼈어요. 이제 크로아티아인임을 포기하는구나, 라는 애국심 같은 감정 때문이 아니라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모욕감을 느꼈었기 때문에, 여권을 손에 넣었을 때 기쁘기만 한 건 아니었죠. »


연방 장관 이그나치오 카시스Ignazio Cassis는 연방위원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이탈리아 국적을 포기했다. 정치계 우파, 특히 스위스 국민당SVP은 정기적으로 이중 국적제를 폐지하자는 의안을 의회에 내며 이중 국적 신분에 대한 비판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여전히 30년 전과 같다. 2017년 이중 국적제 폐지에 실패한 SVP 베른의 에리히 헤스 Erich Hess의원은


«그 사람들은 정말 스위스인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아마 자발적으로 다른 국적을 포기했겠죠.»


하지만 현재 이중 국적제 폐지나 이중 국적자의 권리 제한 등은 우파의 지지만 받고 있다. 이중국적자의 연방 의회 피선거권을 제한하자는 안은 2017년 부결됐고, 오랫동안 이중 국적자는 스위스 외교관이 될 수 없었지만, 그 금지도 폐지됐다. 연방위원회는 1990년 이후 이중 국적제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2020년 연방 대통령이었던 시모네타 소마루가 Simonetta Sommaruga는 3년 전 하원에서 한 연설에서 이중국적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원에 더 많은 이중국적자가 앉아 있으면 더 흥미로워질 것입니다. 아마 옆에 있는 의원이 다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이중 국적자인지 서로 알지 못할 것입니다.»


연방 의회 홈페이지에는 6명의 의원이 이중 국적자라고 밝히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의원은 몇 명 더 있지만, 의회를 통해 공식적인 숫자가 나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은 어쩌면 이제 스위스에서 이중 국적자라고 표명하는 것이 별스럽지 않게 되었다는 신호가 아닐까?


스튜디오 진행 - Eliane Leiser und Curdin Vince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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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SRF Radio «Echo der Zeit» 편집부의 허가를 받고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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