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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김나지움 학생 아빠의 고백 3부

«꼭 김나지움일 필요도 없고, 가고 싶으면 일단 일반 중학교에 다니다가 다시 시험을 볼 수도 있어. 너무 조급해 하지 말자.» 라고 장을 보다 만난 딸아이의 베프 엄마가 한 말이다. 그녀는 스위스인이다. «5학년 때 김나지움 시험공부를 시작했을 때 큰아이가 너무 힘들어했어. 그래서 둘째는 4학년 때부터 성적 관리를 하고 있어.»라고, 딸 아이 반에서 늘 가장 좋은 성적을 내는 아이 엄마가 한 말이다. 그녀는 독일인이다. 누구는, 이민 온 외국인이 (특히 독일인) 스위스의 직업 학교 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아이들을 죄다 김나지움에 보내려 한다고, 그래서 독일 이주민이 급증한 도시 취리히에 김나지움 열풍이 유난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또 누구는 외국인의 자녀가 경쟁적으로 김나지움에 가고, 사회 엘리트층을 차지해 가는 시대가 됐으니 스위스의 좋은 직업 학교 제도는 남 주고 내 아이는 김나지움엘 보내야 한다고 한다. <어느 김나지움 학생 아빠의 고백>은 그런 고민을 함께 하는 스위스 아빠의 고백이다.


어느 김나지움 학생 아빠의 고백 3부

Das Magazin 2018년 3월3일

인터뷰 정리 - 파울라 슈나이트 Paula Scheidt


¼ 짧게

한번은 내가 30분간 수학 문제 하나를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한 건설 회사에서 10명의 인부들이 28일간 벽 하나를 만들어 내야 하는데, 일을 시작한 지 5일 후에 3명의 인부가 적어졌고, 그렇게 9일간 일을 한 후, 2명의 인부가 추가되어 나머지 일을 끝마치려면 건설회사는 모두 며칠이 필요한지 계산하고 있었다. 다른 한 번은 스위스 공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해법을 설명해 달라고 한 적도 있다. 물이 새는 수영장에 다양한 두께의 호스로 물을 채우는 것에 관한 문제였다. 친구는 금세 답을 찾긴 했지만, 아이들이 모르는 방정식을 이용해 문제를 풀었다.


9년 이상 학교에 다니는 혜택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은 아이들이 이런 문제를 풀 때 어떻게 도와줄지 오늘날까지 여전히 의문이다. 수학 문제는 때때로 계산은커녕 질문 자체를 이해할 수 없게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모국어가 독일어가 아닌 아이가 „1/4 더 짧게 하라um ein Viertel kürzer “와 „1/4로 줄여라auf ein Viertel kürzen“ 라는 두 문장 사이의 차이를 이해할지 모르겠다. 여하튼 우리는 딸아이에게 이걸 설명해줘야만 했고, 아이의 모국어는 독일어다.



우린 로타와 함께 시내에 있는 다양한 김나지움 설명회에 다녀왔고, 그중 어떤 학교가 가장 인간적인지 알아내려 애썼다. 입학시험이야 칸톤(주)내 학교가 모두 같지만, 우린 그다음 단계인 견습 기간을 염두에 뒀다. 어떤 학교에서 가장 많은 학생이 견습 기간 후에 쫓겨 나는가? 어떤 학교가 공장 같은 인상을 안 주는가? 한 학교의 학장 대리는 다양한 숫자와 통계로 점철된 연설을 했는데, 1983년 소비에트 연방회 정치인 유리 안드로포브 같았다. 그 학교에 로타를 보내고 싶진 않았다.


한편 매료되기도 하고 한편 두려워지기도 한 복잡한 심경으로 나는 딸 아이가 점점 나 자신의 일부가 되어가는 것을 관찰했다. 예전에 나는, 스키를 잘 타는 나와 달리 딸 아이가 스키를 능숙하게 타지 못한다 해도 괜찮았다. 아이가 바이올린 거장이 되지 않으리라는 걸 받아들였고, 심지어 아내의 반대에도 „재미없으면 그만둬“ 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나지움 시험이 나를 바꿔 놓았다. 나는 더 이상 딸이 해야 하는 것에 거리 두기를 할 수 없었다. 내 삶에 있던 모든 가벼움이 사라진 듯했고, 자주 답답했다. 한번은 로타가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계산했는데, 거북이가 시속 65km 속력으로 앞으로 갔다는 결과가 나왔다. 난 폭발하고 말았다. „그건 불가능해. 그쯤은 너도 알아야지!“ 아내는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목욕탕으로 들여보냈다.


나는 점점 내가 절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되고 있었다.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았던 말들을 입에 담았다. „그런 생각으론 넌 시험에 붙을 수 없어!“ 혹은 “이런 실수를 하는 아이들은 너무 당연하지만, 김나지움에 갈 수 없어!“ 심지어 한번은 „아이고 정말, 너 바보 아니니? 나도 어렸을 때 이 시험에 붙었다고!“ 그 말에 로타는 쿨하게 대답했다. „그땐 시험이 지금보다 쉬웠다고 아빠가 얘기했잖아.“


로타의 다섯살 짜리 동생은 유치원에 다니는데, 우리가 자기한테 계산 문제를 낼 때까지 졸라댔다. 그 아이는 말하자면 가족이 처한 상황에 맞춰 놀았다.

5+5,1+2,20-10. 문제를 다 푼 후엔 나나 아내에게 점수를 매기게 했고, 그 시험지를 장난감과 같이 두었다.


이중 자음

어느 날 저녁 로타는 „엄마랑 아빠는 내가 시험에 붙어야 나를 좋아할 거지?!“ 라고 말했다. 마음이 아팠다. 심지어 나는 로타가 도덕적인 무기로 우리를 공격하려고 일부러 이렇게 얘기했다고 추측했다. 어느 날 밤 잠 못 이루며 침대에서 뒤척이고 있을 때 아내는„우리 딸은 도무지 이중 자음을 이해하지 못해“라고 말했다. 나는 자신을 비난했다. 설명을 잘 못 했었나? 너무 조금만 도와줬나? 방식이 잘 못 됐나? 너무 심한 부담을 준 건 아닌가?


어느 오후 아내가 연구소로 전화를 걸었다. „나 슬슬 미쳐가나 봐. 하루 온종일 시험 생각만 하고 있어.“ 라고 말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로마 스토아 학자들의 자세를 취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 오랫동안 의논했다. 어떤 일이 벌어진다 한들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기. 네로 황제의 스승이었던 철학자 세네카의 책을 읽어볼까? 원서로 읽는 게 제일 좋겠지? 그럼 드디어 내 라틴어 실력을 끄집어낼 수 있겠다. 라틴어는 아마 내가 장기 김나지움 시절에 정말로 배웠다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일것이다.


가끔 난 가능하면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집안을 살금살금 돌아다닌다. 로타 방문이 반쯤 열려있고, 난 아이가 산만하게 연필을 물어뜯거나 창문 밖을 내다보거나 종이에 하트를 그리는 걸 본다. 그 옆에 수학 문제들이 놓여있다. 그럼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이들이 왜 이렇게 고통받아야 할까?


1월 말 마지막 성적표가 나왔다. 우리 딸은 두 과목 모두 5.5를 받았다. 갑자기 얼마나 마음이 가벼워졌는지! 로타도 활짝 웃었다. 다른 부모들이 „잘됐네!“라고 했다. 이제 시험에 붙을 확률은 83%다.


그 후 모의고사가 있었다. 중대한 날의 모의 실습인 것이다. 오후에 집에 돌아온 딸 아이는 시험을 잘 못 본 것 같다고 당혹스러워했다. 그리고 며칠 뒤 결과를 받았는데, 얼마 전의 좋았던 학교 성적에도 불구하고 아주 아깝게 떨어졌다. 실망했지만, 결과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아내와 나는 딸 아이 앞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기로 합의했다. 시험에 붙으려면 아주 쪼끔만 더 하면 된다는 걸 이번 시험이 보여준 거야.


스키 방학 전 아내는 같은 호텔을 예약한 부모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애들이 스키 타러 가기 전에 얼마나 공부를 해야 할까? 호텔에 방해받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 매일 오전에 로타는 같은 처지에 있는 많은 아이와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공부했다.


부모들 사이에서 이상한 활기가 생겨났다. 한 사람이 좋은 학습 책을 발견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부모에게만 그 책을 추천했다. 다른 엄마가 „알리시아 때문에 걱정이에요. 아직은 김나지움을 갈 만큼 성숙하지 않은 것 같아요“ 라고 말하면, 아내와 나는 왠지 꼭 거기에 맞장구를 쳐야 할 것 같아 말한다. „알죠. 로타도 그런 것 같아 우리도 걱정이에요.“ 꼭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걱정하는데, 우리 딸은 스스로 알아서 잘하고,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건 왠지 너무 잘난 척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떨어질 위험도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지금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며 활짝 웃었다가 시험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얼마나 창피할까? 차라리 혹시 모를 실패에 미리 대비하고 싶었다. 동시에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괴로웠다. 로타가 너무 긴장하면 어떻게 하지? 아이가 진짜 시험에 떨어지면?


어느덧 3월12일에 있는 입학시험이 내 시험인 것 같았다. 날짜를 센다. 로타가 잠을 못 잘 것 같은 공포감이 든다. 벌써 알아봤는데 수면제는 아이들에겐 너무 위험하단다. 아이들을 시험을 치는 교실까지 데려다주지 말라고 시험지침서에 쓰여 있다.


결과가 나왔을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벌써 상상해보려 애쓴다. 하지만 그때 할 수 있는 반응 중 그 상황에 맞는 것은 하나뿐이다. 실패했더라도, 어쨌든 그 길고 힘들었던 시간이 끝났다는 사실, 실패도 인생에 속한다는 것, 이번은 그저 지나가는 실패일뿐 이라는 것 등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기뻐하기- 심리학 책에 나와있는 해답들 총정리해서.


팬케이크

아이들은 아이들 자신의 길을 갈 것이고, 부모가 김나지움을 다녔다 해서 딸아이가 꼭 김나지움을 갈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에 난 분명 덜 성숙한 것 같다. 지난 시간 동안 난 로타가 태어났을 때 분만실에서 의사가 해줬던 말을 자주 떠올린다. „하나만 잊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고, 부모의 분신도 아닙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맡겨졌을 뿐 입니다. 아이를 양육한다는 의미는 아이가 독립적으로 될 수 있게 교육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매일 아침 나는 로타를 위해 팬케이크를 만든다. 몇 주째 로타는 팬케이크만 먹는다.

다른 부모들로부터 그 집 아이들은 저녁 8시 반이면 잠을 잔다는 얘기를 듣는다. 로타는 10시가 넘어야 잠을 잔다. 그것 때문에 아내에게, 시계를 몰래 한 시간 앞당겨 맞춰두자고 제안했다. 문제는 와이파이 기기의 디지털 시계는 맘대로 바꿀 수가 없다는 점이다. 무언가를 붙여서 시계를 가려 놓아야할 판이다.


내가 대범해져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비참하다. 어제 딸아이가 어려운 수학 문제 몇 개가 든 종이를 나에게 내밀었다. 다 맞았는지 계산해 보는 데 30분이나 걸렸다. 모든 문제가 다 맞았다. 로타의 방으로 가 열광하며 아이를 칭찬했다. 아이가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더니 „아빠 진정해“라고 말했다.


윗 글은 타게스 안차이거의 허가 하에 번역한 글로 원본 링크는 다음과 같다.

https://www.dasmagazin.ch/2018/03/02/bekenntnisse-eines-gymi-vaters/?reduced=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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