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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참정권 50주년

남편: 여자는 집안일이나 해야죠. 선거권은 필요 없습니다.

기자: 부인께서는 남편의 의견에 찬성하십니까?

아내: 그럼요. 여자가 있어야 할 곳은 부엌이잖아요.

가부장 제도가 성문법의 힘을 얻어 스위스에서 절대적인 규율로 통했던 1970년대 초 뉴스 인터뷰의 한 장면입니다. 칸톤 아펜첼 이너호덴에서는 80년대까지 볼 수 있는 모습이었고요.


여성 참정권 반대 포스터 1920년 & 1946년

올해 2월 7일은 스위스 여성의 참정권 획득 5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1872년 제네바 대학에서 마리 괴그-포숄랑 (Marie Goegg-Pouchoulin)의 서명 운동을 시작으로 백 년의 투쟁 끝에 1971년에 이르러서야 연방 정부에서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였습니다. 이미 많은 분이 영화 Die Göttliche Ordnung을 통해 1960-1970년대 여성 참정권을 향한 노력과 저항의 물결에 대해 보셨지요.


여성 참정권 찬성 포스터 1954년 & 1969년

여성 참정권은 단순히 선거에 참여할 권리로 그 의미가 끝나지 않습니다. 한 나라의 문화와 생활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 정책을 바꿀 힘을 의미합니다. 즉,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성별로 인해 받는 차별을 불식시킬 수 있는 하나의 수단입니다. 일례로 1985년에 있었던 국민투표에서 절대적인 가부장 제도의 법적 기반이었던 혼인법 (Eherecht) 폐지 법안에 남성의 절반이 반대했었죠. 당시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었다면 아내의 구직 활동이나 학업이 남편의 허가서를 전제 조건으로 하는 상황이 90년대까지 이어졌을 것입니다. (혼인법 폐지 1988년)


그럼 현재 스위스의 성 격차는 어느 정도일까요? 문화적, 정치적으로 고정된 성 역할은 아직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유럽 마지막으로 시행하게 된 아버지 육아 휴가나, 세계 최고 수준의 어린이집/오후 돌보미 비용, 급식이 거의 전무한 학교 시스템이 그 일례입니다. 부부 중 누군가는 집에 남아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비용 절감에 큰 도움이 되는 생활 방식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출산과 함께 근로 일수를 줄이거나 퇴직하는 쪽은 여성입니다.

연방 통계를 살펴보면 가정과 살림에 쏟는 시간에 대한 남녀 격차를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여성이 가정과 살림에 쏟는 시간은 남성의 거의 두 배에 해당합니다. 10년 동안 남녀가 가사에 참여하는 비율이 조금씩 변하긴 했지만, 큰 차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남녀 간 경제적 격차는 어떨까요?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여성의 교육 수준과 사회 진출이 늘면서 남녀 간 경제력 격차가 많이 줄었을 것으로 많은 분이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임금에 대한 성 격차는 오히려 고소득자에서 더 많이 나타납니다. 연방 통계에 따르면 고소득자에서는 임금 격차가 18.55% (Kader 1+2)로 집계되었고, 소득 수준이 낮아지면서 임금 격차가 줄어듭니다 (12.75% Kader 3, 9.39% Kader 4, 7.56%, Kader 5).



2월 20일은 스위스 평등 임금의 날입니다. 몇 년 전 취리히 여성센터 (Frauenzentrale Zürich)에서 남녀평등 임금 캠페인을 진행했었죠. 여성이라는 이유로 동등한 경력과 학력에도 불구하고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는 현실을 비꼬면서 말입니다. 캠페인에서 제작한 영상에서는, 홈쇼핑에서 캔따개 (Doseöffner)를 판매하면서 좀 더 저렴한 제품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임금의 남녀 격차를 비꼬고 있습니다. 캔따개라는 제품명에 단순히 여성형 어미 -in이 붙어서 (Doseöffnerin)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고 광고합니다. 그 이름이 남성형이건 여성형이건 캔따개의 기능은 똑같은데 말이죠. 이 영상에 출연하는 쇼핑호스트는 물론 이 캠페인에서 채용한 연기자이지만, 단순히 여성이니까 당연히 저렴하다면서 웃는 모습이 얄밉기만 합니다.



혹자는 가정에서 한 명이라도 전일제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충분한 생활비를 벌 수 있으니, 여성이 집에서 가사를 전담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당연하다고 반문합니다. 맞벌이 가정은 세금과 양육비 폭탄을 맞는 게 현실이니, 한쪽이 전업주부로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합니다. 현재의 사회보험은 정확히 백 년 전에 그러한 논리에 기반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요즘은 결혼한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정 외에도 비혼이나 동거, 한부모 가정, 독거 등 다양한 삶의 형태가 공존합니다. 사회보험의 기본 개념은 경제적 취약 계층을 사회 구성원의 기여금으로 돕는 것이지만, 정작 위에 언급한 도움이 필요한 사회 구성원들은 이 오래된 사회보험에서 보호받기 쉽지 않습니다. 특히 전일 근무 직업을 가지지 않고 가사를 부담하는 사람, 대부분의 경우 여성이 빈곤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별, 별거, 이혼 등으로 인해 갑자기 생활비를 조달해야 하는 의무를 지거나, 또는 살림과 육아를 전담하면서 오랜 경력 단절이 발생합니다. 재취업을 해도 낮은 임금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노년에 재정적 문제에 처할 가능성이 큽니다. 양육이나 병간호 등 가족을 이유로 경력이 단절되는 경우를 보상해 주는 사회보험 항목은 극히 드뭅니다.



현재 스위스의 연금 (AHV) 체계에서는 근로 연령 동안 연금에 연속적으로 기여한 금액과 그 기간에 따라 향후 연금이 차등 지급되기 때문에, 경력 단절이 있거나 적은 근무 일수로 장기간 일 한 사람의 경우, 노년에 낮은 연금 수준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전문가들은 배우자의 도움이나 재산이 없이 사회보험만으로 노년을 보내려면, 근로 연령 동안 평균 70% 이상 근무 및 연금 기여도가 있어야 노년 빈곤을 피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여성 참정권은 단순히 50년 전의 역사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가까운 미래에 대한 개인적/사회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가정에서의 성 역할을 점검하고 선거철에는 참정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해서 미래의 여성에 대한 배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게 될 미래의 남성, 즉 우리 아이들 모두의 성 평등을 돕는 작은 실천을 나와 가정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가족과 이웃, 학교에서 접하는 성 역할은 3세부터 자연스럽게 습득이 되고, 10세가 되면 우리 머릿속에 고정된다고 합니다.

아래는 일상생활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성 평등의 첫걸음으로 UN Women에서 제안하는 실천 사항입니다:

  1. 자녀와 성 평등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통적인 성 역할 구분 없이 자녀를 대하고, 부모도 고정된 성 역할과 다르게 다양한 감정과 책임이 있음을 보여주기

  2. 가사 분담하기: 우리 가족의 가사 분업과 의사 결정에 성 격차가 존재하는가 대화하고, 남성 가족 구성원의 가사 참여 적극적으로 격려하기

  3. 다양한 성 역할 장려하기: 집안일부터 진로 선택까지 고정된 성 역할을 따를 필요 없이, 개인마다 다양한 성 역할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녀가 다양한 성 역할을 집에서 경험하는가, 아니면 고정된 성 역할만 경험하는가

  4. 자녀의 의견을 존중하고, 성 역할에 고정되지 않은 의견과 꿈을 지지하기

  5.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된 성 역할부터 정리하기

  6. 외모 지적 그만하기

  7. 젊은이들에게 배우기: 그레타 툰베르그, 말랄라 등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앞장서서 논하는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가족과 함께 대화하기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