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인

여성 투표권: 스위스 남자들이 일부러 늑장부리던 시절

1971년에야 여성 투표권 도입


저자: 토마스 마이센 (Thomas Maissen)

원문 게재일: 2018년 8월 14일 (NZZ.ch)



Frauenstreik in Zürich (ETH-Bibliothek Zürich, Bildarchiv / Fotograf: Comet Photo AG (Zürich) / Com_LC0479-002-002 / CC BY-SA 4.0 )


1893년 뉴질랜드는 세계 최초로 전국 차원의 여성선거권을 도입하였다. 유럽에서는 1906년 핀란드가 선두에 서며 피선거권까지 포함하는 여성선거권을 도입했다. 곧이어 스칸디나비아 독립국들이 그 뒤를 따랐으나, 나머지 국가의 경우는 세계 1, 2차 대전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과거와 달리 1, 2차 세계대전의 경우 전면전 성격이 강하여, 전쟁기간 동안 여성들 역시 남자와 동일한 강인함을 발휘함으로써 국가 전시 공동체의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활동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되었다. 1918년에서 1920년까지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및 합스부르크 왕정의 다른 후계국가들과 미국이 여성선거권을 도입했고, 영국 또한 제한적으로 여성의 선거권을 인정했다. 1945년과 46년 사이에는 프랑스, 일본, 유고슬라비아, 벨기에와 이탈리아 등이 그 뒤를 따랐다.


스위스에서도1, 2차 세계전쟁 말미에 자유민주주의 노선을 중심으로 관련 움직임이 있었는데, 특히 1904년부터 이 문제를 당정 목표의 일부로 삼았던 사회민주당이 앞장섰다. 여성선거권은 1918년 전국 총파업 당시의 요구사항 가운데 하나였으며, 1921년에는 6개의 칸톤이, 1946년과 47년에는 5개의 칸톤이 관련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하지만 이 모든 투표는 칸톤과 게마인데 등에서 한번도 통과된 적이 없었고, 연방의회에서도 매번 부결됐다. 1929년 17 만명의 여성과 7만 9천명의 남성이 서명한 스위스 여성투표권 추진 협회의 청원을 연방위원회가 다루기까지 근 30 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청년세대는 양성평등을 남성의 권리 양보가 아닌 인간의 기본 권리로서 요구


50년 대 후반이었다. 이리스 폰 로텐 (Iris von Roten)은 울타리 속의 여자들 (Frauen im Laufgitter) 이라는 책을 발표했는데, 정치, 직업, 성 등에 있어서 여성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변론이었다. 주부라는 여성의 이상상에 대한, 소위 불변의 여성적 가치에 대한 단호한 거부는 거센 스캔들을 불러일으키며 여성운동계 내부에서도 양극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여성계는 이 책이 출판된 해에 작지만 상징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958년 리엔 (Riehen) 시민 게마인데는 최초로 여성의 선거권을 인정하였으며, 1966년에는 바젤-슈타트 칸톤의 나머지 지역도 여기에 합류했다. 1959년에 바트 (Waat)와 노이엔부르크 (Neuenburg)에서는 칸톤 차원의 여성투표권을 받아들였고, 그 이듬해에는 제네바도 그 뒤를 따랐으며, 후에는 바젤시와 취리히도 동참했는데, 후자의 경우 다섯 차례 투표에 부친 끝에 통과되었다. 1959년 전국 차원의 여성투표권에 대한 국민투표가 진행된 당시 불어권 지역의 세 개 칸톤 만이 찬성했을 뿐 전국 투표권자의 3분의 2가 반대에 표를 던졌고, 아펜젤 칸톤의 인너로덴 (Innerrhoden)에서 찬성 비율은 5 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했다.


연방위원회는 여성에게 예비군 의무복무를 통해 국방의무를 부과하려는 안에 대한 보상으로 이 전국차원의 여성투표권을 국민투표에 부쳤던 것이다. 다른 나라들처럼 전쟁의 논리가, 이번에는 특별히 냉전의 논리가 여성해방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주권자, 즉 스위스 남자들은 과거의 전쟁에서 내적 트라우마를 입은 존재가 아니었다. 끔찍한 실제 전투의 상처로 위축된 채 전선에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국경 수비에 복무한 자신들의 노력 덕분에 여자와 아이들을 재난으로부터 지켜 낸 영웅으로 귀환한 것뿐이었다. 이런 인식 속에서 남자들은 임시로 여자들이 차지하고 있던 일자리도 당연하게 되돌려 받았다. 따라서 스위스 남자들은 1959년 투표에서 굳이 연대의 폭을 넓혀 자신의 정치적 권한과 그에 수반되는 권력을 여성들과 나누어 가지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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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저자 토마스 마이센의 허가 하에 번역한 것이며 원본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www.nzz.ch/schweiz/als-die-schweizer-maenner-sich-absichtlich-verspaeteten-ld.1412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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