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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성파업의 날

멕시칸 없는 하루 (A Day Without a Mexican)라는 영화를 보셨는지요? 미국 주류 사회에서 외면받는 업종에 종사하는 라틴계 노동자들이 미국 사회 전반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꼬집는 블랙코메디 영화입니다. 어느 날 새벽 전국에 멕시칸들이 분홍색 연기로 사라졌는데, 라티노 이민자에게 비우호적인 강경 보수파 정치인의 하루가 무너집니다. 아침 식사를 차려주고 아이를 돌봐줄 가정부도 사라지고, 즐겨찾던 식당에서는 주방에서 일하던 멕시칸들이 사라져서 장사를 못하고, 배달 인력도 사라져서 피자도 못 시켜먹고, 수퍼는 계산원이 부족해서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외국인 노동력은 적절한 보수를 받지 않고도 우리 일상을 지탱시켜 주는 원동력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절반, 여자들이 없는 하루는 어떨까요?


오늘 6월 14일은 여성 파업의 날입니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이 하루 파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월요일이니까 우선 취학 연령의 아동이 있는 집이라면 성인 중 누군가가 아이를 학교 보낼 준비를 하고, 점심 시간에 돌아올 아이가 오후 수업에 늦지않기위해 점심을 준비하고, 오후에 귀가할 아이를 위해 집에 머물러야 합니다. 미취학 아동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24시간 성인 누군가가 붙어있어야 합니다. 청소, 빨래, 요리 등의 집안일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 성인은 엄마입니다. 가족의 도움을 받을 경우 또한 할머니, 이모, 고모이며, 이웃의 도움을 받을 경우도 친구네 엄마, 옆집 할머니 등 여성의 손길입니다.


이렇게 아직도 ‘여성의몫’으로 남아있는 육아와 살림을 사회가 체계적으로 대신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은 이미 구축되어있습니다. 문제는 비용이 너무 비싸고, 그래서 대부분이 비용을 들이지 않고 직접 해결하게 됩니다.그러자니 가족 중 누군가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을 절대적으로 늘려야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여성입니다. 아이의 정서 발달을 위해, 또는 모성애 때문에, 라는 이유로 부부 중 여성이 자발적으로 살림과 육아를 전담하게 됩니다. 직장 여성이나 학업을 마쳐야 하는 여성의 경우에는, 내 아이만 친구들과 떨어져서 학교 급식을 먹고 오후 돌봄이에 보내는 것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경험합니다. 풀타임 직장을 다녀서 자녀가 매일 돌봄이 교실이나 어린이집에 다닌다면, 아이를 딱하게 여기는 이웃들의 시선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팽배하다 보니, 육아의 의무가 없는 여성들도, 은퇴한 부부 중 여성이 자발적으로 가족과 이웃을 보살피는 역할을 맡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자발적인 선택인데 왜 문제가 될까요? 노동과 연결된 임금으로 각종 세금, 보험, 연금으로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 살림과 양육이라는 가족 내 무보수 노동을 도맡아 하는 여성은 노년 빈곤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노년까지 가지 않더라도 독신, 이혼, 사별, 질병, 장애 등 인생 항로가 바뀔 수 있는 큰 사건이 벌어지면 평소에 재교육과 경력의 기회가 적거나 없었던 여성이 경제적 위험에 처하기 쉽습니다.

살림과 육아를 대신하는 유료 서비스 종사자들도 대부분 여성입니다. 살림과 육아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이면서, 그런 이유로 여성이 할 만한 직종으로 분류하고 추천합니다.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학교 현장에서도 아이들의 성비율은 반반이지만, 종사자들은 대부분이 여성입니다. 직종의 성구분이 부지불식간에 재교육되는 셈입니다.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 하다보니 경력이 오랜 기간 단절되고, 재취업에 성공해도 파트타임만 가능하니 임금 수준이 비교적 낮은 경우가 많습니다. 취업을 하더라도 노동 - 임금 - 연금으로 이어지는 현대 사회에서 유리한 입지를 가질 수 없는 악순환의 조건입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족의 울타리에만 머물거나 취업을 하더라도 살림/육아의 연장선상인 직종을 선호할까요? 정말 모든 여성이 자발적으로 그런 삶을 선택한 것일까요? “니네엄마의 연방위원회” (Eidgenösische Komission dini Mueter) 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모임에서는 이것을 여성의 진정한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불합리한 사회 체계에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 뿐이라 설명합니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 24시간의 파업에 동참하길 권합니다. 정말 파업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여성의 무보수/저임금 노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을 권합니다. 파업에 동참할 수 있는 분들께는 거리로 나와서 어린이집 이용료의 정부 보조와 가족 내 양육에 대한 연금 혜택을 함께 이 사회에 요구하자고 권합니다.

‘멕시칸 없는 하루’라는 영화에서처럼 모든 여성이 공기 중의 연기로 사라지고 가정, 어린이집, 학교, 식료품점, 식당, 의료, 요양원 등 여성 종사자의 비율이 절대적이면서 이 사회의 근간의 되는 곳들이 정지해 버리는 일은 오늘 6월 14일에 벌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노년, 이혼, 사별, 장애, 질병 등과 같이 한 개인의 선택이나 단기간의 노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인생 사건을 함께 대비하는 정부와 사회의 노력에 여성의 무보수/저임금 노동도 포함되어야 할지, 어떻게 가능케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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