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인

이념적 과업으로서의 스키 스포츠

최종 수정일: 2019년 4월 23일


Ski Weltmeisterschaften in St. Moritz 1948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스위스 청소년들이 스키와 보드 타는 법을 잊지 않도록 올림픽 우승자가 힘을 보탠다.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타냐 프리덴 (Tanja Frieden)이 스위스 스키 스포츠 장려협회 (Schneesportinitiative Schweiz)의 간판 모델로 활동하는 것이다. 케이블카 운영업체, 스포츠 용품업체, 스키학교, 스키협회와 관광업계 등이 뭉쳐 이 대규모 광고 공세에 힘을 합치고 있다.

이미 수 십년 동안 수 십 만명의 스위스 어린이들이 스키 캠프에서 슈템턴과 평행턴을 (그리고, 인생살이에 중요한 또 다른 활동들인 야스 카드 놀이, 커피 다 마시기, 연애하기 등도 같이) 배우고 있다. 이런 스키 붐이 일어난 데는 그 어떤 체육 차원의 동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직 경제적 정치적 이유가 전부였다. 스키가 스위스 국민 체육이 되기까지는 소위 이념적 곡예 타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세계대전으로 비어 버린 호텔 객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가 보자. 1940년과 41년 사이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나치 독일은 프랑스, 베네룩스 3국, 노르웨이와 덴마크를 점령하고, 아프리카에서 전투를 치르고, 러시아 출정을 계획했으며, 연합군은 북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와 싸웠고, 기타 등등의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세계가 전쟁의 화염에 휩싸여 있을 때 그 와중에도 온전했던 스위스는 호텔 객실이 차지 않는 관광업계가 걱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940년 41년 시즌, «전국 관광업 진흥협회»는 스키 학교에서 수 천 명의 아이를 대상으로 무료 강습을 제공했다. 같은 해에는 최초의 스위스 청소년 스키 캠프가 열려서 500 명의 남자 청소년이 폰트레지나 (Pontresina)로 모여 들었다. 뿐만 아니라 1940년 7월 뤼틀리 소집 (세계 대전 중 알프스 요새 수호계획을 알린 군 장교 소환회의_역주) 이후부터는 알프스의 신성화 전략이 스위스의 전쟁 심리전술의 일부가 되었다. 이런 전략과 산악지역에서의 동계 스포츠는 더없이 잘 맞아 떨어지는 것으로, 이런 맥락 속에서 스키 스포츠는 소위 정신적인 국토방위와 알프스 수호를 위한 체육적 기여로 선전됐다.

그러니 앙리 귀상(Henri Guisan) 장군이 여러 군데 어린이 및 청소년 스키캠프를 직접 방문해서 기꺼이 사진을 찍고 공개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스키 스포츠와 관련해서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사실 한 가지는, 귀상 장군의 아들이 당시 스위스 스키 협회의 회장이었으며 그 부인 메리 귀상-도엘커 (Mary Guisan-Doelker)가 1943년부터 엥겔베르크의 청소년 스키캠프를 운영했다는 점이다.



멀티미디어 광고 공세

스위스 스키 스포츠의 쏟아지는 광고사태는 곧 멀티미디어로 확대되었다. 1943년 리기 산 지역의 스키 개척자인 요세프 다힌덴 (Josef Dahinden)은 <스키 타는 나라> 라는 영화를 찍었다. 영화는 그가 리기-칼트바트에서 부인 오이게니와 함께 호텔 벨레뷰를 운영하면서 새로운 고객 유치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는 내용이다. 10 만 명의 관객이 다힌덴의 영화를 보고, 스위스 관광협회에서 대규모의 옥외 광고를 제공했다. 그 외에 3500 명의 저소득 층 인구가 무료 스키 강습 기회를 얻었다. 전략은 주효했다. 이념적으로,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성공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실제 스위스 국민들은 국내에서 스키 휴가를 즐기는 일이 더 많아졌고, 전쟁이 끝나갈 즈음에는 호텔 객실점유율이 다시 전쟁 이전 기준 90퍼센트까지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상당한 성공이다. 군의 수장이자, 참모부 연대장인 연방장관 칼 코벨트 (Karl Kobelt) 가 한 마디로 요약한다: «스위스 청소년은 스키를 탄다, 온 국민이 스키를 탄다, 또한 스위스 군이 스키를 탄다.»



비코 (Vico)가 노래하고, 모두 따라 부르다

코벨트 연방장관은 나중에, 즉 1963년에 가수 비코 토리아니 (Vico Torriani)의 히트곡 가사를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것일까? „모두 스키를 타네, 모두 스키를 타네, 온 나라가 스키를 타네.“ 이 노래는 거의 모든 국민이, 스키 리프트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자동적으로 함께 따라 부르게 되는, 그래도 분위기 망치는 일이 없는 그런 노래가 되었다.

1972년 스위스가 삿포로 올림픽에서 수많은 금메달을 따고 베르나르트 루씨(Bernhard Russi)와 마리-테레스 나디히(Marie-Theres Nadig) 같은 새로운 스키 스타가 배출되면서 스위스는 진정한 스키 국가가 된다. 여기에 편승해서 1975년, 배우이자 가수인 이네스 토렐리(Ines Torelli)는 히트곡 „아로사의 지지“ 를 발표 하는데 노래는 알프스의 바람둥이에 관한 자유분방한 내용이다.

미투 (#MeToo) 운동 이후로 이 «지지»는 스위스 겨울 스포츠 광고에 적절한 인물이 아니다. 덕분에 그 간판모델 자리는 이제 보드 스타 타냐 프리덴 (Tanja Frieden)의 차지가 됐다.


저자인 미카엘 반 오르수프 (Michael van Orsouw)는 역사가이자 자유기고가이다. http://www.michaelvanorsouw.ch/ 위 글은 Tagesanzeiger의 허가 하에 번역한 것이며 원본 링크는 다음과 같다. 원본 출처:

https://blog.tagesanzeiger.ch/historyreloaded/index.php/4033/ideologisch-verordnetes-skifah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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