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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삶과 존엄한 죽음 - 스위스의 조력 자살에 대해

기사 작성 유영미


가진 게 없어도 오며 가며 들르는 누구에게라도 맛있는 차와 간식을 대접했던, 따뜻한 농부였던 내 시할머니는 세계적인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처럼 루게릭병을 앓으셨다. 처음에는 손과 손가락, 다리 근육이 약해지다가 말도 어려워지고, 음식물을 삼키기도 어려워진다는 그 병은 사람마다 다른 속도로 진행된다고 알려져 있다. 50대 중반에 처음 할머니에게 나타난 그 병은 다행히 천천히 진행됐고, 할머니는 86세에 생을 마감하실 수 있었다. 돌아가시기 전 몇 해 동안, 일 년에 한두 번 찾아뵐 때면 얼굴이나 팔이 누구에게 맞은 것처럼 퍼렇게 멍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으니 장애물이 나타나도 피하지 못해 부딪히고 넘어져서 생긴 상처들이었다. 그래도 할머니의 뇌 기능은 여전히 빛이 나서 유머를 잃지 않으셨다. 어느 날 할머니는 혼자 집에 계시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셨는데, 일어날 수가 없어서 일 나갔던 농부 아들이 잠깐 들여다보러 올 때까지 몇 시간을 그 자리에 누워 계셨다고 했다. 나중에, 넘어져 뒤집어진 거북이 같았다고 웃으며 이야기하셨을 때, 가슴 한편이 먹먹했지만, 거북이처럼 뒤집어져 있는 나를 상상하지는 못했었다. 잊고 있던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른 건 조력 자살 단체 디그니타스Dignitas를 취재하면서였다.


한국인 두 명이 스위스로 건너와 디그니타스를 통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최근 알려지면서 YTN으로부터 스위스에서의 안락사에 대한 취재 요청이 왔다.


스위스에서 조력 자살이 허용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하지 않다. 교회와 국가가 분리되기 전엔 자살 자체가 금기시되었고, 자살자와 가족들은 처벌 대상이었다. 교회와 국가가 분리되고, 1884년 헌법이 생겼지만, 자살이나 조력 자살을 법으로 금지한다는 내용은 없다. 그래서 스위스에서 조력 자살은 헌법이 생긴 이래 130년이 넘는 지금까지 내내 합법이었다. 조력 자살이 악용되는 것을 막고자 1942년에 형법 115조 “이기적인 동기를 갖고 자살을 돕는 경우에는 처벌하겠다”는 조항이 생겨났고, 효력을 갖게 되었다. 1982년 조력 자살을 돕는 단체 EXIT가 처음 생겨났고, 1984년부터 단체를 통한 조력 자살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조력 자살은 죽음을 원하는 사람이 의사로부터 약물을 처방받아 스스로 약물을 복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병자가 원해 의사가 투약해 병자의 생명을 끊어주는 적극적 안락사는 스위스에서 불법이다. 한국에선 지난 해부터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가 의미없을 경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영양공급이나 약물 투여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가 허용되고 있다. 스위스에서 조력 자살을 돕는 단체는 다섯 곳인데, 그 중 가장 큰 단체는 EXIT지만 EXIT를 통해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건 스위스인뿐이다.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갖도록 돕는 것에 내국인과 외국인 구별이 없어야한다는 입장으로 외국인 회원도 받고 있는 곳은 디그니타스와 엑스 인터내셔널(EX International), 이터널 스피릿 (Eternal Spirit) 등의 단체다. 이들 단체는 스위스를 외국인 자살 관광 국가Sterbetourismus로 만든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 중 “자살 관광 Sterbetourismus”라는 조롱을 처음으로 들었고, 한국인 회원이 있다는 단체 디그니타스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인터뷰 요청한 미디어 열 군데 중 한 군데만 허락한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미디어와 접촉을 꺼리는 단체와 몇 번의 이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단체 사무실 건물 외경을 촬영하지 않고, 사무실 내부와 직원을 촬영하지 않고, 주소를 절대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후 인터뷰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죽기 위해 스위스를 찾아온 외국인들이 마지막 약물을 복용하고 잠들 수 있게 하기 위해 디그니타스가 마련한 집 “블루하우스” 촬영도 물론 거절당했다.


찾는다고 마음먹자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디그니타스를 취재한 한 매체처럼, 그렇게 찾아낸 블루하우스 앞에 오랜 시간 잠복하면 휠체어를 타고 들어갔다가 관에 실려 나오는 노인도 몰래 촬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존엄한 죽음을 위해 멀리 스위스를 찾은 외국인은 그렇게 몰래 촬영되어 선정적인 죽음 이야기를 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지 않을 것이었다. 또한 촬영을 거절한 디그니타스 측의 입장도 있었다.


디그니타스 측은 그들이 숨어있는 이유가 그들이 하는 일을 숨기려 하거나 비난과 조롱이 두려워서가 아니라고 말했다. 몇 해 전 영국 BBC에서 나간 디그니타스 방송을 보고 조력 자살을 원하는 한 말기 암 환자와 가족이 영국에서 스위스로 날아와 그들 사무실에 나타났다고 한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렇게 단숨에 날아왔을까, 그들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력 자살이 실제 시행되기 위해서는 여러 번의 의료 검사와 확인 절차가 필요하고, 그 과정은 몇 달에 걸쳐 이뤄지기 때문에, 단체가 울며 불며 하소연하는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왔던 길로 다시 돌려보내는 일 뿐이었다고 한다. 이런 에피소드는 몇 번 더 이어졌고, 이후 그들은 죽음을 앞 둔 절박한 이들에게 상처 하나를 더해 주지 않기 위해 단체를 드러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들 입장을 존중하기로 했다.


디그니타스 회원 파일들

취재를 하며 조력 자살 단체 EXIT에 가입한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올해 32살의 젊고 건강한 여성 회계사 플로어 씨는 이미 10년전에 단체에 가입했다고 했다. “ 자살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예요. 만약 나에게 사고가 생겼거나 무슨 일이 벌어져 삶과 죽음을 오가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 그 부담스럽고 중요한 결정을 내가 사랑하는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 삶을 내가 결정하듯이 내 죽음 역시 가족이나 의사나 다른 누군가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결정하고 싶었어요.“ 라고 말한 플로어씨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고, 부모님과 파트너 역시 단체에 가입했다고 했다.


2011년 취리히주에서는 조력자살을 반대하는 주민 발안으로 투표를 했는데, 84.5%의 압도적인 반대표를 받으며 조력 자살 자체에 대한 찬반 논의를 종결했다. 그런데도 사회가 조력자살의 장을 마련하기보다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그에 걸맞은 삶의 질을 보장하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비판이 있다. 취리히 주의회 의원이자 요양원 대표인 마르쿠스 샤프너 Markus Schaffner씨는 “요양원에서의 오랜 경험에 따르면, 늙어가는 사람에게 고통과 외로움을 견뎌낼 좋은 공간을 제공하면 누구도 자살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과제이자 어려움은, 어떻게 하면 노인들과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살아가고 싶게 만드는 삶의 질을 제공해주느냐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디그니타스 측과 인터뷰를 하며, 뇌는 살아 움직이는데, 말도 못 하고, 밥도 못 삼키고, 똥도 못 누어, 다른 사람에게 온몸을 맡기고는, 굴욕스럽지만 눈만 깜빡이고 있어야 하는, 뒤집어진 거북이 같은 나를 상상했다. 그런 마지막보다는, 가족과 슬프지만 따뜻한 이별을 나누고, 듣고 싶은 베토벤 음악을 들으며 잠이 든 104세의 호주 과학자 구달 박사 같은 마지막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여전히 하고 있다. 이제 동시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겠다. 곧 디그니타스 대표 분과의 인터뷰 전문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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