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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을 알 수 없는 은행 계좌 – Echo der Zeit의 특별 팟캐스트 방송 1부 (1)

최종 수정일: 2018년 12월 13일

2018 년 8월 11일 방송

주인을 알 수 없는 은행 계좌 – Echo der Zeit의 특별 팟캐스트 방송 1부


1997년 1월 9일 밤, 취리히 파라데플랏츠 (Paradeplatz) 근처에서 한 경비원이 스위스 은행 조합 건물 내부를 순찰하다가 어마어마한 발견을 하게 된다.

„그곳에 들어섰을 때 왼쪽에 두개의 핸드캐리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경비원의 이름은 크리스토프 마일리 (Christoph Meili)다.

„없애버리면 안 될 서류라는 게 분명했습니다.“

크리스토프 마일리는 28살이고 기혼이며 두 명의 자녀가 있다. 동그란 안경을 끼고 머리숱이 많은 그 껑충한 남자는 단번에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었다.

„개중에는 1930년대부터 1940년 사이의 현금 전표들이나 여러가지 강제 경매된 베를린의 부동산 자료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치 시대에 유대인들이 스위스 은행에 맡겨두었던 돈, 휴면 계정 자산을 둘러싼 싸움에서 가장 선두에 서게 되었다.


3부작으로 제작된 팟캐스트 시리즈 <주인을 알 수 없는 은행 계좌>에서 우리는 20년 전 각종 신문에 일면 기사를 장식했던 한 사건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그 사건은 이곳Echo der Zeit에서도 보도되었다.

휴면 계정 자산을 둘러싼 싸움이 어떻게 그렇게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는가? 어떻게 결국 해결책을 찾게 되었는가?

„난 스위스의 일반적인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었다고 판단합니다.“

„스위스 은행엔 나치 정부의 희생자들이 맡겨놓은, 소위 주인 없는 자산이 여전히 있을 거라 추정됩니다. 추정 금액은 수십억 프랑이 될 거라 합니다. „

„무슨 얘기만 해도 반유태주의라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도 똑같이 소리를 질러야 합니다“

„ 민중과 정부 당국 사이에, 또 국민들의 개별 그룹들 사이에 차가운 불신을 몰아넣지 말아야합니다“

„식사 중에 그 은행장이 얼마의 돈을 원하느냐고 물었답니다. 그쪽 계통 사람들이 얼마나 감수성이 떨어지는 지 잘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난 베아트 솔테만 (Beat Soltermann)이고, 오늘 이 „주인을 알 수 없는 은행 계좌“의 에피소드에 초대되어 휴면 계정 자산을 둘러싼 싸움에 대해 이야기 나눌 분은 저널리스트 발츠 브루파허(Balz Bruppacher)다. 그는 스위스 AP 통신사의 책임자로서 휴면 자산을 둘러싼 싸움에 대해 보도했었다.


당신은 AP 통신사가 마일리씨에 대해 당시 어떻게 보도했는지 알고 있는가? 그 사람이 자료들을 발견했을 때, 그에 관해 기사를 내보냈나?

„ 그건 아주 중요한 테마였습니다. 그 사건은 순식간에 큰 의미를 가지게 되었죠. 특히 그 전 가을에 의회가 베르시어Bergier 위원회의 설립과 관련해 소위 자료 폐기 금지법을 만들어 통과시켰기 때문에, 당연히 아주 흥미로운 사건이었죠. 그런 이유로 순식간에 엄청난 테마가 됐습니다. 미국 기자들이 어떻게 그 사건에 뛰어드는지도 볼 수 있었어요. 그 한 사람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드러났습니다. 스위스 당국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또 반응을 안 하는지, 부분적으론 얼마나 형편없이 반응하는지, 은행은 또 얼마나 대응을 못 하는지 다 지켜볼 수 있었어요. 당시 그 사건이 벌어졌던 은행 조합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건 마치 다비드와 골리앗의 싸움 같았다. 세상 전체를 상대로 싸우는 것 같았다.

„맞아요. 그는 외국에서도 순식간에 영웅이 되었어요. 어느 날 밤 우연히 어떤 자료를 맞닥뜨린 한 일반 경비원이, 그게 중요하다는 걸 어디서 읽었는지 들었는지, 여하튼 행동을 취했잖아요. 아주 긴장되었던 순간이었고 흥미로운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죠. 그에게는 다소 불행하게 끝이 났지만. „

그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에피소드에 더 진행하겠다.


크리스토프 마일리 사건, 그는 휴면 계정 자산을 둘러싼 싸움의 상징이 되어버렸는데, 그 사건은 아직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 기억에 남아있다. 하지만, 마일리로부터 사건이 시작된 건 아니었다. 마일리는 그 사건의 최고 하이라이트였다.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던 나치 시대에 공식 중립국이었던 스위스는 유럽에서 안전한 항구였고, 전쟁을 피해갈 수 있었다. 스위스 은행에 엄청난 재산이 맡겨졌다. 그 중엔 재산과 생명에 위협을 받고 쫒겨 다녀야 했던 많은 유대인들의 재산도 포함되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전쟁 중에, 또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들의 예금 잔액은 그대로 남았다. 그들이 남긴 재산을 찾으려 애써봤지만 아주 어려웠다. 45년 5월 8일 독일이 항복한 후 계좌 주인이 실종되었거나 죽었거나 살해된 경우 그 재산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규정이 생겨났다. 바로 소위 워싱턴 협정이었다. 스위스는 „모든 요구에 균형을 맞춰“ 2억5천만 프랑에 해당하는, 독일이 약탈한 금을 서부 전선 연합에 양도했다. 또 스위스는 휴면 계정의 자산 2천만 프랑을 유엔에 송금했다.

이후 오랫동안 잠잠했다. 유대인의 후세들이나 생존자들이 그들의 돈을 찾으려고 시도 했지만, 은행들은 법적인 근거로 장벽을 쌓았다.

„어떤 일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기도 하지만, 그 사건만큼은 저한테 아주 흥미로운 사건이었습니다“

저널리스트 발츠 브루파허는 휴면 계정 자산에 대해 자주 상세히 보도했고, 90년대에 그 테마가 어떻게 다시 수면 위로 떠 오르게 되었는지 잘 기억하고 있었다.

(다음주 계속)


위 글은 SRF의 Echo der Zeit 편집부의 허가 하에 번역한 것이며 원본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www.srf.ch/sendungen/echo-der-zeit/spezial-podcast-bankkonto-unbekannt-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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