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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을 알 수 없는 은행 계좌 – SRF Radio Echo der Zeit의 특별 팟캐스트 방송 1부 (2)

2018년 12월 13일 업데이트됨

„이 테마에 관해서는 거의 30년 동안 조용했었는데, 그 모든 것이 94년 말, 95년 초 외국에서 들어온 보고서들에 관해 의회에서 첫 발안을 하면서 다시 활발해졌습니다. 그러던 것이 95년이 지나면서 점차 가속도가 붙었고, 97년 98년엔 최고점에 다다랐습니다“


어떤 움직임들이 생겨났고, 다양한 금액 얘기가 떠돌고 있었다. 스위스 은행 연합이 스위스 은행들에 있는 휴면 계정 자산의 가치에 대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은행들의 옴부즈맨(감찰관)이 설문조사를 했고, 775 계좌에서 약 총 4천만 프랑의 자산을 찾아냈다. 터무니없이 적다는 게 유대인 단체들의 반응이었다. 베른에서 조사가 더 있었고, 워싱턴에서 첫 청문회가 있었다.

스위스 은행에 있는 나치 희생자의 재산을 찾는 걸 감독하려는 국제 위원회가 생겨났다. 이후 베르시어 위원회와 미 특별 위원회 스튜어트 아이젠스탓(Stuart E. Eizenstat)역시 그 일을 맡았다.



경제부 장관 카스퍼 필리거(Kasper Viliger)는 전쟁 중 난민 정책에 있어서 과오가 있었다고 사과했다. 당시 스위스가 유대인을 상대로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이후 나치 희생자의 이름으로 스위스 은행들을 상대로 한 첫 소송이 제기되었다. 200억 프랑이 요구됐다. 미국 대사 토마스 포러(Thomas Forrer) 하에 만들어진 대책 위원회가 진행한 두번 째 소송도 이어졌다. 이 모든 것들이 마일리가 그 역사적인 자료들을 발견하기 전에 벌어진 것이다. 마일리 사건이 이런 상황들을 엄청나게 첨예하게 만들었다. 워싱톤의 스위스 대사는 입을 잘 못 놀려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가 한 비밀 전보에 휴면 계정 자산을 둘러싼 싸움을 너무 비외교적으로 분석했다는 것이다. 이후 심지어 연방각료인 장 클로드 델라뮤라(Jean Claud Delamüra)가 자제력을 잃고 폭발했다.



„ 맞습니다. 그때가 96년 말이었는데, 연방각료였던 델라뮤라의 불길한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새해 전야에 공개된 연말 인터뷰에서 그가 인질의 몸값과 협박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겁니다. 이후, 특히 외국에서 거센 반응들이 밀려들어왔죠. 다들 분개했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 몇 달 전부터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위한 펀드를 만들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연방정부와 은행들이 자꾸 시간을 끄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사건으로 그 논의에 가속도가 붙게 된 거죠. 이후 정말 그 논의가 아주 재빠르게 진행되었어요.“


그 펀드는 2억9천5백만 프랑이 들어간 홀로코스트 특별 펀드였다. 가능한 한 빨리 필요한 생존자들에게 돈을 지급하자는 내용이었다. 스위스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보이는 선의의 제스춰라고 할까. 좀 늦었지만 대신 좀 더 포괄적인 아이디어가 포함됐었다.


„18시. 스위스 라디오 DRS 1의 Echo der Zeit 입니다. 연방 대통령인 아르놀드 콜러(Arnold Koller)는 오늘 오전 연방의회에서 세계 대전 중의 스위스 과거에 대해, 간절히 기다렸던 연설을 했습니다. <연방정부는 연대를 위해 특별하고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스위스 재단이 만들어질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 „


„연방대통령 콜러가 의회에서 연대를 위한 재단을 공표했던 그 순간이, 나중에 보니 스위스 사람 입장에선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신념으로 부터 나온, 자부심있는 나라의 자발적 행동입니다.“


그 연대 재단의 재정은 국립 은행에 비축되었던 금으로 70억 프랑이 마련될 예정이었다. 재단에서 나온 이자 수익은 전 지구의 인도주의적인 활동에 유익하게 쓰일 거라 했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가 모든 곳에서 환영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거센 비난을 했던 사람 중 한명이 바로 스위스 국민당 (SVP) 의원 크리스토프 블로허(Christoph Blocher)였다.


„… 돈을 요구하는 그들에 확실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는 2차 세계 대전에서 했던 스위스의 역할을 옹호했다. 그리고 유대인 협회에 돈을 지급한다거나 협상을 하는 데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했다.


„ 우리는, 조금만 뭐라하면 반유대주의자라 소리치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외국의 유대인 단체가 하는 요구에 맞서 대처하는데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똑같이 해야합니다.“


„연방 정부는 제정신이 아니다, 라는 게 그가 내뱉은 첫 말이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데, 그때가 97년 여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으로 꽉 찬 강연회장에서 그는 한편으로는 연방정부를 다른 한편으론 유대인 단체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하지만 늘 반유태주의 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 교묘하게 애썼습니다. 저한테는 사실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가 결국 이 연대 재단을 쓰러뜨린 바로 그 인물이었으니까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재단은 결국 없던 일이 되었다. 국민들은 오랫동안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재단과 다른 타협안까지 모두 거절했다. 정치면에서만 뜨거웠던 논쟁이 아니었다. 스위스 은행들에도 많은 것들이 걸려있던 문제였다.


스위스 은행들을 한번 들여다보면, 당신은 경제 분야, 특히 당시 스위스 은행의 역할을 아주 밀착 취재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들이 너무 오랫동안 기다린 건 아닌가?

„물론입니다! 그들은 정말 이 테마와 관련해, 말하자면 늦잠을 잤다 할 수 있습니다. 그걸 잘 보여주는 일화 하나가 있습니다. 유대인 국제 위원회의 회장 에드가 브란프만(Edgar Branfman)이 이스라엘의 사무총장과 베른에 왔을때, 은행 연합 수뇌부와의 만남이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은행 연합의 회장이 당시 게오르그 크라이어(Georg Kreier)였는데, 이건 브란프만이 해준 이야기고, 반론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은행연합을 찾아갔는데, 리셉션에서 10분을 서서 기다리게 하더니, 나중에 게오르그 크라이어가 연설을 했답니다. 그리고 식사를 하러 갔는데, 식사 중에 그 은행장이 브란프만에게 묻길, 그래서 얼마를 원하냐는 겁니다. 이게 사실 그쪽 사람들의 감수성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잘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그 뒤에 얼마나 끔찍한 배경이 있는지, 많은 사람, 많은 정치인, 특히 아주 많은 은행가들이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톨레만(Tolemann)이 입에 담았던, 협박과 인질의 몸값이라 표현했던 것 자체가, 뒤늦게 되돌아보면 아주 멍청했다고 말할수 밖에 없습니다. 50년전에 끔찍하게 쫓겼고, 죽임을 당했던 사람들을 대표하는 단체가 관계되어 있다면 그렇게 말해선 안 되는 거죠. 제가 생각하기에 스위스 관계자들은 그걸 아주 오랜 시간 깨닫지 못했습니다. „


주인을 알 수 없는 은행 계좌. 이건 휴면 계정 자산을 둘러싼 싸움에 대한 Echo der Zeit의 특별 팟캐스트 시리즈 1부였다.




위 글은 SRF의 Echo der Zeit 편집부의 허가 하에 번역한 것이며 원본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www.srf.ch/sendungen/echo-der-zeit/spezial-podcast-bankkonto-unbekannt-1-3

오역을 발견할 시 메일 주시면 참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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