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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 제빵 열풍 불어

사재기가 한참이었던 3월 14일, 1 kg 밀가루 10개를 구매했다. 10 kg 나 되는 밀가루로 무엇을 해 먹을까 이리저리 궁리하다 아주 옛날에 산 제빵기도 있으니 빵을 만들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3월 18일 인터넷으로 다양한 종류의 빵을 검색하다 보니, 빵을 만들 때 꼭 필요한 재료가 있었다. 바로 이스트였다. 그동안 빵을 만들어 먹지 않아 제빵기에도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는데, 집에 이스트가 있을 리 없었다. 3월 20 아침, 이제 상점에 들어갈 때 번호표를 나눠 준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세수도 하지 않고 옷만 대충 갈아 입은 채 - 내 인생에서 한 번도 없었던 일 - 동네 슈퍼 coop으로 달려갔다. 매장 오픈 시간 8시에 딱 맞춰 도착했는데, 내가 받은 번호표는 58번. 그래도 대기하지 않고 들어갈 수 있어 다행이라고 여기고 제빵 재료들이 있는 칸으로 갔다.


여전히 밀가루 칸은 텅 비어 있었고 이스트도 없었다. 사람들이 밀가루만 사 간 것이 아니고, 뭘 해 먹을 지 계획하고 이스트도 다 사간 것 같았다. 허무하게 집으로 돌아와 주위 친구들에게 이스트 한 봉지라도 있는지 문자를 돌렸다. 아무도 없었다. 인터넷을 뒤졌다. 맥주용 이스트는 있어도 제빵용 이스트는 다 판매되었다고 나왔다. 3월 21일 시누이가 화장지 사러 가게에 가는데 이스트가 있으면 사 주겠다고 했다. 얼마 후 연락이 왔는데, 화장지는 아직 많이 있는데, 이스트는 대형 마트 migros에도 coop에도 없다고 했다. 제빵기까지 꺼내서 열심히 청소해 놨는데, 다시 넣어야겠다고 푸념했다.

Butterzopf

3월 24일 저녁에 장을 보러 갔다. 이게 웬일인가? 3개가 들어간 이스트 3봉지가 남아 있었다. 얼른 전부 샀다. 그 다음 스토리는 뻔하다. 요즘 매일 빵을 구워 먹고 "확~~찐자"가 되어 가고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취리히 사람들이 제빵사가 되었다고 타게스 안차이거가 3월 25일 보도했다. 요즘 밀레니얼 세대뿐 아니라 한 가정의 아버지도 자신이 만든 바싹바싹한 빵을 아주 자랑스럽게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다고 한다.

또한 타게스 안차이거는 Covid-19 시국에 빵을 제대로 잘 만드는 것은 신분 상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제빵 열풍은 현재 새로운 트렌드로 인스타그램에서 뿐만 아니라 구글 검색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빵 만들기 레시피" 를 검색하는 사람은 3월 20일 이후 급격히 늘어났다고 한다. 빵집이 문을 닫은 것도 아니고, 슈퍼에서 빵을 살 수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집에서 빵을 만드는 사람이 늘어났을까? 이는 즐겨 가는 카페나 레스토랑이 문을 닫고,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이 없어지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빵 구울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취리히의 대형 서점 오렐퓌슬리 (Orell Füssli)도 평소보다 지난주에 요리책이 더 많이 팔렸다고 한다. 푸드 블로거들도 지난주부터 많은 사람이 블로거를 방문했다고 한다. 현재 제일 많이 찾는 레시피는 Butterzopf -우유 식빵 레시피와 비슷- 라고 한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코쿠닝(Cocooning) 또는 스칸디나비아어로는 휘게(Hygge)라고 부르는데, 이는 현대인들이 위험한 외부 세상을 피해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또는 혼자서 보내는 소박하고 아늑한 시간을 뜻한다. 디지털화로 세상이 너무 빠르게 돌아가자 사람들은 "천천히 가기"를 그리워하면서 직접 쨈 만들기, 발코니에서 야채를 키우기, 털실로 양말을 짜기, 빵 만들기등을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 자신과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외출을 삼가해야 할 때 핫한 트렌드인 코쿠닝에 동참해도 좋을 듯 하다.


기사와 관련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좀 더 상세히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www.tagesanzeiger.ch/zuercherinnen-und-zuercher-ein-einig-volk-von-backenden-633509396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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