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hsincho

특집: 코로나 시대의 여행기-신해섭 편 제2 부

실존적 불안을 안고 떠나는 여행. 불안함에 더한 태생적 예민함. 여행 전날의 들뜸으로 숙면하지 못한 몸상태. 이 모든 것에 쐐기를 박으며 해섭이를 괴롭힌 주범은 바로 마스크였다고 한다. 취리히 공항에서부터 착용한 마스크는 인천 공항에 도착하고 거기서 또 자가격리 장소로 갈 때까지 약36 여 시간을 화장실에 가거나 식사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벗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마스크가 신경 쓰여서 한잠도 못자고 도착한 인천공항에서는 또 다른 번거로운 절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는 이전 보다 더 작은 그룹을 지어 칸 별로 내리고, 즉시 추적앱을 설치해야 하며 복잡한 표지판을 따라 일정 노선으로 이동해야 했다고 한다. 입국 심사는 마치 1대1 면접시험을 보듯 상세한 질문과 답변을 해야 하며 특히 입국 이유와 자가 격리장소는 매우 정확하고 상세히 기재해야 한다. 입국심사대를 지나면서 열체크가 되는데 이는 이마 부분을 잠시 열체크 기계에 정지하고 있으면 바로 확인되어 신속히 지나가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 다음에는 상세한 코로나 정보지를 받고 짐을 찾아 지정된 길을 따라 공항을 나간다. 나가면 자가 격리 목표 도시 별로 줄을 서게 되어 있는 푯말들이 있어 목표 도시로 가는 방역 버스나 방역 택시만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일반 버스나 택시는 탈 수 없다. 해섭이는 방역 택시를 탔는데 택시 안은 강력 비닐 칸막이로 운전자와 손님을 분리해 놓았다고 한다. 장거리 비행기 여행과 여전히 벗지 못하는 마스크, 깐깐한 입국 심사를 통과하는 동안을 침착하게 견뎌 내는 힘은 "도착"이라는 짧은 단어가 주는 무한한 안정감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자가격리도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없다. 보통 외국인은 지정된 곳에서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F4 비자를 가진 사람은 외국인처럼 국가에서 마련한 자가격리 호텔에 가거나, 자가격리용 숙소로 허가 된 곳을 격리 동안 빌리거나 가족의 집으로 갈 수 있다. 단, 가족의 집에서라도 엄격하게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해섭이는 자가격리 시에는 가족과 접촉 없이 숙소에서 지낼 계획이었기에 출발 전에 미리 자가격리용 숙소 사이트에서 원룸을 예약했었다. 밤 늦게 거의 36시간 만에 "나만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드디어 마스크의 감옥에서 해방.

원룸 안에는기본 생필품이 비치 되어 있고 보내온 사진으로 파악하건데 음식을 끓일 수 있는 간단한 전기 렌지 하나와 세탁기, 냉장고, 식탁, 소형 빨랫줄, TV가 오밀조밀 배치되어 있었다. 첫날은 그냥 쓰러져 죽음과도 같은 잠을...



도착하면 3일 내에 자가격리 지역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해섭이는 다음날 바로 방역 택시를 불러 검사하러 다녀 왔다. 이모가 가져다 준 음식 재료로 간단히 요리를 해서 끼니를 때우고 나니 멍해 지고, 드디어 한국에 도착했고 14일동안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사실이 현실감으로 다가 왔다고 한다. 잠도 못자고 허공에서 지낸 1.5박 때문에 뱃속이 더부룩하고 컨디션도 저조했지만 세평 남짓 공간, 오로지 혼자라는 사실에 오히려 뭔가 창의적인 힘이 솟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이 솟아나는 창의력을 해섭이는 이후 이삼일 동안 오로지 가족과 친구들의 오래된 사진을 찾아 꼼꼼하게 이모티콘을 만드는 일에 쓰게 된다.온갖 부끄러운 가족 사진, 아기때 사진, 친구, 할머니, 이모 사진을 다 뒤지고, 하나하나 표정에 맞는 구절을 넣고.. 더 나아가 이 이모티콘 만드는 일로 사업을 할 생각에 빠진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징후다. 현실감을 잃어가는 자가격리의 징후...... 물론 제정신으로 돌아 온 후로 이 이모티콘은 우리 가족 사이에서만 사용하는 전용 이모티콘으로 남았다.



수시로 격리자의 상황 파악을 위해 경고음이 전화에 울리거나, XX지역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메시지가 앱으로 전송 된다고 한다. 깜짝 깜짝 놀라던 경고음에 익숙해 지던 나흘 쯤 지나니 드디어 지루해 지기 시작. 부식 재료로 밥을 해먹기도 하고 격리 시설에 있는 수건이 찜찜해서 세탁해 바짝 말리기도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쿠팡으로 배달해 먹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TV도 보고 넷플릭스도 보고, 운동도 하고 청소도 했는데 아직 하루가 저물지 않았다.

날짜만 세면서 지내던 중 드디어 난생 처음 '혼자만의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사촌동생과 이모가 문앞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목도리와 먹을 거리를 가져다 놓고 저 먼 골목에서 창문으로 손을 흔들며... " 무슨 시절이 이래..." 하는 퍼포먼스로 크리스마스는 저물었다.



그래도 시간은 가고 우리 모두의 삶을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눈 코로나의 해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자가격리를 마치기 이틀 전에 다시 한번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한다. 빨리 나가고 싶은 조바심에 날짜를 잘못 계산한 해섭이는 12월 30일 다시 한번 코로나 검사를 했다. 막바지로 갈수록 곧 나간다는 기대감에 하루가 남았는지 이틀이 남았는지도 헷갈렸다는 건 내가 아는 해섭이의 모습은 아니다. 이런 상태로 2020년을 보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는 모른다. 내게 보내준 당시 문자는 이렇다.

"내일 1일에 빨래 하려고. 두 번 자면 출소. ㅋㅋ

이상해 느낌. 걍 더 있고 싶어 ㅋㅋㅋ

할머니 집에 가면... 잔소리도 듣고, 내 맘대로 못하고 ㅋㅋㅋ

눈치 보고

여긴 내 세상 ㅋㅋㅋ …... 암튼 이 집.. 정들었는데 떠나네."

의식하면 하루 하루가 길게 느껴지지만 지나고 나면 또 금방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걍 더 있고 싶'은 저 심리는 혹시 나가면 본격적으로 시작될 실존의 불안 때문은 아니었을까?

1차 코로나 검사 때 보건소에서 받은 자가격리 키트에는 흰 비닐 봉지와 오렌지 색 비닐 봉지가 들어 있다. 격리 시설을 나갈 때에는 그간 자신이 만들어 낸 쓰레기를 먼저 하얀 봉투에, 그 다음에 다시 오렌지 색 봉투에 넣어 발코니에 놓으라고 안내 되어 있다고 한다. 조바심에 코로나 검사를 하루 먼저 했지만 별 문제 없이 해섭이는 1월 2일 오전 14일 동안의 동굴에서 세상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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