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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코로나 시대의 여행기-신해섭 편 최종- 인터뷰

코로나 시대의 여행기 신해섭 편은 이번 이야기로 마감합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신해섭 님과의 인터뷰로 진행했습니다.


1. 자가 격리 끝나고 나갔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

처음에 얼떨떨하고 오히려 무감각 했다. 그리고 사회 분위기 상 외국에서 입국했고 2주동안 자가 격리를 했다는 게 약간 죄인 취급 받는 느낌이 들어 밖에 나가는 것도 조심스럽게 생각되었다. 유럽에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고 당시는 확진자 수가 계속 진정 되지 않을 때라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특히 처음에는 연로하신 외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할머니 댁에서 지냈는데 할머니와 함께 지내다보니 더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할 것 같아 최대한 바깥 출입을 자제했다. 당시 확진자 수가 높고 만날 수 있는 인원 숫자도 5인 미만으로 규정되어 2월에 촬영할 예정이던 영화 프로젝트를 3월이나 4월로 미루게 되었기 때문에 이 유예된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면서 노쇠하신 할머니를 영상에 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나중에 영화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사람도 많이 만나고 행동반경이 넓어질 것이라 생각되어 할머니를 자주 못 뵐 것 같아, 바로 할머니의 코로나 일상을 찍는 다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할머니의 영상을 찍으면서 내가 영상찍는 일,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 넓은 공간을 그리워 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니 한국도 마스크를 쓰긴 하지만 그 외에는 특별히 더 지키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큰 이모 댁에서 지내고 있으며 할머니는 1주일에 한번 방문한다.


본인이 만든 요리 영화를 할머니께 보여 드리는 장면


스위스에서 갈고 닦은 요리 솜씨로 신해섭 군이 할머니께 차려드린 저녁상


2. 조금 적응 된 다음에 한 일은?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상황이고 활동이 제한 되었지만 나중에 찍고 싶은 영화에 속초 풍경이 필요했기에 속초에 가기로 했다. 마침 방학 중인 사촌 여동생 셋과 일정을 맞춰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1월 20일 2박 3일 여정으로 속초에 다녀 왔다. 속초에는, 특히 속초 중앙 시장에는 예상 보다 사람이 많았다. 여행이 제한되어 국내여행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식당이 닫혀 있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안전과 자유로움을 위해 거의 매 끼니 시켜 먹었다. 사실 어릴 때 나보다 한참 어리다고 생각했던 사촌 동생들이 이제 다 커서 차를 몰고 함께 여행을 간다는 사실이 새로웠고 사촌끼리 시간, 공간, 연령, 성별과 상관없이 이렇게 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설악산


속초항의 저녁


속초 건어물 시장


3. 속초 여행 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 같은데 거리, 카페, 식당 풍경은 어땠나?

사람들을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하면서 카페를 이용했는데 당시에는 카페 풍경이 매우 쓸쓸했다. 식탁이 거의 없고 카페에 1시간 이상 머물 수 없었는데 좌석에 거리지키기를 위해 "앉으면 안됨" 과 같은 종이가 붙어 있거나 좌석과 책상이 쌓여 있기도 했다. 들어갈 때는 열체크와 큐알 코드를 입력해 항상 추적이 되도록 조치되어 있었다. 나와 같은 외국인이나 노인들은 큐알 코드가 없기 때문에 들어갈 때 항상 서면으로 신고했다. 현재도 여전히 5인 미만의 수칙이 지속되고 있어서 사람들이 몰려 앉지는 못하는 상태이다. 특히 홍대앞이나 전에 여행객이나 인파로 번잡했던 곳은 당시 겨울이고 날이 추워서 더 그랬겠지만 많은 유흥업소들이 문을 닫고 테이크 아웃만 가능했으며, 망한 업소들에 휴업, 가게 임대 등의 팻말이 붙어 있어 쓸쓸함을 더했다. 지금도 그렇다.


4. 사람들의 코로나 의식 수준은 어떠한가? 직업, 학력, 연령별로 차이가 나는 것을 느낄 수 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사람마다 각자 다르게 코로나를 인식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철저하게 의식하고 무서워 하면서 수칙을 지키고 엘리베이터를 안 타거나 식당에서도 밥 먹을 때 빼고는 항상 마스크를 쓰고 이야기한다. 마스크를 항상 써야 하는 택시 기사분들은 답답해 하시는 듯 내내 창문을 열고 운전하신다. 다른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받아 들이고 기본 수칙만을 지키는 듯하다. 연령, 학력, 직업 별 차이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


5. 스위스에 있을 때에 비해 개인적으로 코로나 팬더믹에 대해 달라진 느낌이 있나?

유럽인에 비해 공포감이 더 있고 유럽은 왜 아직도 그 모양이냐고 하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한번 걸리거나 의심 상황이 되기만 해도 한국 사회는 사회에 피해를 주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기 때문에 더 조심하게 된다. 미디어의 영향이 많아 아스트라 제네카 공포감이 많은 것 같다. 여행을 원하는 사람도 전에 비해 현저히 없다. 외국인이라는 의식 때문에 스위스에서보다 모든 면에서 조심하게 되는 변화가 있다.


6. 한국에서 앞으로의 개인적인 스케줄은 어떻게 되나?

현재 계획한 영화의 로케이션, 크라우드 펀딩, 배우 섭외 등이 모두 이루어진 상태이다. 시나리오의 마지막 정리가 남았고 이제 4월 초에 촬영하게 되면 편집, 완성, 기초 후반작업 후 스위스로 귀국할 계획이다.


7. 코로나를 무릅쓰고 한국에 간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나?

후회한 적은 없고 영화를 만드는 일이 잘 진행 되고 있어 다행으로 생각하며 오히려 스위스에서 막막하던 상황에 비해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 정체성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고향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계속 나를 따라 다니는데 스위스를 떠날 용기는 없었다. 처음으로 이렇게 오래 내 일을 하기 위해 한국에 오게 된 것인데, 일 때문에 한국에 산다고 상상해 보는 것이 가능해 졌고 살 수 있겠다는 용기도 생겼다. 하지만 동시대 내 세대의 한국 사람들을 보면 힘들게 사는구나,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조건이 맞으면 한국에 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가족과 오래 떨어져 있게 된 것도 성장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한국 가족과 시간을 보내니까 다른 가족애를 체험하게 된다. 내가 자연스럽게 가족으로 받아들여 지는 것과 나도 저절로 흡수되는 것이 신기하다. 여전히 독립은 아니지만 스위스 가족이 멀리서 응원해 주는 것도 아주 가깝게 느껴지고 자주 연락하지 못해도 의지가 된다. 나를 아무 조건없이 한국에 보내주고 나의 도전을 응원해 주신 것에 감사한다.


8. 평소 스위스에 있을 때는 한국음식을 많이 그리워 했던 것으로 아는데 한국에서 한껏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한가?

스위스에서는 말한대로 한국음식이 엄청 먹고 싶었는데 막상 한국에서는 그냥 하루하루 살기 위해 먹는 느낌으로 바뀌고 오히려 스위스에서 먹던 음식이 생각 난다. 특히 케밥. 그리고 그렇게 맛없다고 생각했던 학교 식당 음식도 생각날 정도이다. 


9. 여기는 영화관이 닫힌 상태이다. 한국은 영화관을 오픈하는 것으로 아는데 최근에 본 한국 영화가 있나?

한국 영화는 아니지만 '미나리'를 봤다. 6개 부문 오스카에 노미네이션 되기 바로 전날 영화관에 가서 봤다. 영화를 보고 '한국인이란 무엇인가?'를 더 생각하게 됐다. 골든글로브 시상에서 이 영화에 한국어가 주로 나와 외국어 영화로 수상했다는 소식 때문에 그랬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사실 실제 한국 사람들에게는 '미나리'가 외국영화라고 느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내용이 한 가족이 낯선 곳으로 가서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이고, 그 상황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상황들을 이야기 한 것이어서 오히려 한국 디아스포라, 혹은 다른 민족 이민자들에게 공감이 될 수 있다고 느껴졌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 아이러니하게 생각됐다. 그래서 골든 글로브 같은 상황을 풀어가는 숙제는 정확히 디아스포라 인들의 것이라고 느껴졌다. 여기에도 확실히 속하지 못하고 저기에도 확실히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숙제이고 이 영화가 그런 것을 극복해 나가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같은 디아스포라 영화인으로서 희망적으로 느껴졌다. 골든 글로브의 처사가 우리들이 다 느끼는 태도-경계 안/밖의 사람들이 쉽게 취하는 태도-를 극적으로 보여 줬다고 생각한다.


10. 그것과 관련하여 전주 영화제에서는 한국 제작자가 한국 영화인들, 한국 배우들과 함께 만들었지만 감독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심사에서 제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바로 그런 것에 대해 디아스포라의 과제로 다가왔다는 이야기다. 결국 국적이나 언어 같은 것으로 쉽게 디아스포라를 규정해 버리는데 세계가 모두 섞이고 문화가 모두 섞인 지금의 세계를 살면서 이러한 단순한 분류로 오히려 분리, 배제의 경향은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미나리'를 보면서 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한 "집은 무엇인가?-한 인간을 어디 어디에 속한다고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 왜 인간은 어디에 속해야 하는가?" 그런 질문을 많이 떠올렸다. 어디에 속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으로 차별을 받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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