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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그대의 차가운 손> 작가와의 만남

Han Kang – Deine kalten Hände, Lesung und Gespräch

글 객원 최경아


1998년 초겨울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때 그녀는 <여수의 사랑>에 이어 <검은 사슴>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었고, 나는 모 통신사의 문학 동호회에서 '문학을 좋아하던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던' 사이비 문학도였다. 그날의 만남도 그 동호회에서 주관한 작가와의 만남이었는데 함께 간 사람들은 아무도 기억나지 않고 오로지 작가 한강의 모습만 또렷이 기억난다.

​그녀는 어두운 실내에 사는 식물 같았다. 좁은 어깨까지 내려오던 머리카락, 까무잡잡하고 화장기 없던 피부, 깊은 눈동자, 조용하고 느릿한 움직임, 희미한 미소와 함께 느리게 그러나 차근차근 질문에 대답하는 그녀를 나는 옆에서 계속 바라보고만 있었다. 저렇게 섬세하게 생겨야 소설 같은 걸 쓸 수 있나 보다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후 한국에서 사 온 소설집에서 <채식주의자>나 <몽고반점> 같은 중단편으로 가끔 그녀를 만났다. 그러다 3년 전 그녀의 이름이 신문에서 대서특필되는 걸 보았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받으면서 한강은 그야말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고 있었다. 나는 그때 이곳 친구들에게 한강과 만난 적이 있다는 걸 자랑삼아 얘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주 <그대의 차가운 손> 낭독회를 겸한 작가와의 만남이 취리히 문학관에서 열린다는 공지를 봤다. 한강이 온다고? 내 기억 속의 여리고 자그마한 그녀가 20년의 세월을 넘어 12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드디어 나를 만나러 오는구나! 설렜다. 월요일이라 일이 밀려 있었지만 일찍 퇴근해 저녁까지 든든히 먹은 후 행사 장소로 갔다.


강당은 꽉 차 있었다. 진행자와 함께 들어서는 그녀에게서 나는 먼저 세월을 보았다. 까만 가디건과 여전히 화장기 없는 얼굴, 어깨까지 내려오는 생머리, 약간 피곤해 보이는 표정. 그럼에도, 그녀의 움직임에선 20년 전에는 없던 여유와 안정감이 느껴졌다. 어두운 방에서 햇살이 비치는 밝은 세상으로 나온 것 같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맑았다. <그대의 차가운 손>을 스위스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으며 어느 낯선 작가의 작품을 읽는 기분이었다고 운을 뗐다. 다시 쓴다면 다르게 쓸 거냐고 묻자, 그때와 지금의 한강은 분명 다른 사람이지만 고치고 싶지는 않다고. 그때의 한강으로서는 그게 진실이었고, 그게 최선이었기 때문에. 과거의 내가 부끄럽고 민망할 때도 있지만 그때의 나도 그게 진심이었고 최선이었으니 이제 그만 용서하자던 내 마음과 같은 걸까?


'왜 손인가, 왜 차가운가'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우리의 얼굴은 가면일 경우가 많은데 손은 얼굴보다 솔직하고 본질적이며 생산적인 신체 부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차가움은 소설 속의 등장인물, 즉 힘든 어린 시절을 겪은 장운형, 고도비만이었다가 거식증으로 혈액 순환과 호르몬 변화로 몸이 차가워지는 L, 여섯 번째 손가락을 잘라야 했던 E를 관통하는 중요한 이미지이자 느낌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몸 전부가 손안에 있다는 수지침의 원리도 언급했다.


작가는 독일어 통역사가 옆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관객과 직접 소통을 시도하기도 했다. 노르웨이 퓨처 라이브러리 ( 2014년 시작된, 100년간 매년 1명씩 작가 100명의 작품을 노르웨이 오슬로 외곽 숲에 100년간 심어 둔 나무 1천 그루를 사용해 오는 2114년에 출판한다는 내용의 공공예술 프로젝트) 의 5번째 작가로 선정된 것에 관해 묻자, 100년 후면 자신도, 여기 있는 우리 누구도 이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을 텐데 우리가 사라진 후에도 삶은 지속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해 나가는 이 프로젝트가 신선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스위스 청중이 대부분인 낭독회 답게 요즘 말로 CD를 삼킨 듯한 완벽한 목소리의 성우가 독일어 버전의 <그대의 차가운 손>을 읽었는데 조금은 쓸쓸하고 낮은 목소리의 작가가 직접 한국어로 읽을 때와 느낌이 많이 달랐다. 한강의 작품은 그렇게 쉽게, 씩씩하게, 매끈하게 읽으면 안 돼. 그녀의 책은, 그녀의 언어들은, 그녀의 인물들은 섬세하고 예민하고 아프고 병적이라서, 읽기가 힘들어 덮어 놓았다가 다시 기운을 차려야 읽는 소설이란 말이야…라고 외치는 내 안의 목소리.


맨부커 상을 받은 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한국에서의 작가로서의 위상은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관객의 질문에, 글을 쓸 때는 내가 과연 이 소설을 끝낼 수 있을까만 생각하지 그 이후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으며 한국 문단내 자신의 영향은 조금도 없다고 생각한다는 그녀. 한 시간 넘게 지속된 낭독회를 마치고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 주었다. <소년이 온다> 영어 번역본을 사서 나도 그녀에게 갔다.


​"작가님은 기억 못하시겠지만 20년 전에 U통신사에서 주관한 작가와의 만남에서 뵌 적이 있어요", 말했더니, "어머 제가 그런 것도 했어요?" 하며 뜻밖이다는 표정이다. 그녀의 눈빛은 예전 그대로다. 세월이 훌쩍 흐른 어느 날 다시 저 눈빛을 향해 "2019년에 취리히 문학관에서 작가님을 뵌 적이 있어요"라고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인들과 간단하게 뒤풀이를 하고 나오니 밤바람이 찼다. 손까지 시릴 정도였다. 손을 잡고 나란히 걸을 사람이 있으면 좋을 밤이겠다 싶다가, 차가운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혼자 걸어도 그다지 쓸쓸하지 않은 밤이라는 생각을 했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우리는 변했고 적지 않은 이별을 하고 낯선 길에 서 있지만 살아 있어서, 쓸 수 있어서, 그리워할 수 있어서,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 아닌가.


​어느새 손이 따뜻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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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강 홈페이지http://han-kang.net/

취리히 문학관 http://www.literaturhaus.ch/

퓨쳐 라이브러리 프로젝트 https://www.futurelibrary.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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